‘소녀지향의 착한 로맨스’ 왈가닥 결혼하다

‘왈가닥 결혼하다’ 이서윤

왈가닥 결혼하다
Title: 왈가닥 결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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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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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윤의 2006년 작 《왈가닥 결혼하다》는 순정 만화의 영향이 짙다. 여주인공인 선우린은 전형적인 슈가 코믹류의 다정한 부모님과 천재 시스터보이 오빠들에게 무한한 과보호를 받는 막내 여동생 캐릭터다. 이런 소녀들은 현재의 건강한 외형과는 상관없이 어린 시절 대수술을 받은 적이 있고(선우린은 11살 때 심장병 수술을 받았다.) 공부는 단지 안 할 뿐, 천재적인 두뇌를 타고났으며 항상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험심으로 가득 차 있다. 냉정하고 오만한 대학생 오빠 친구도 이상하게 여주인공 미소 한 번이면 무장해제다. 고등학생 시점에서는 절대 오르지 못할 나무인 대학생 오빠 친구(혹은 과외 선생님)와 잘도 맺어진다. 한마디로 순정 만화의 주요 독자층인 여중, 고생들의 로망의 집합체인 것이다. 세상의 때라고는 단 한 점도 묻지 않은 그녀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항상 애정이 충만하고 밝고 맑다 깨끗하다.

선우린의 캐릭터는 《왈가닥 결혼하다》가 그리려는 바가 무엇인지를 뚜렷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소설은 작가의 의도대로 지극히 소녀지향의 착한 로맨스를 표방하고 있으며 학원물 수준의 서사를 벗어나지 않는다. 20살 선우린의 시선을 여성이 아니라 소녀 단계에 강제 고정시킨 탓에 그녀의 고민 꺼리라고는 “오지 탐험가의 꿈과 서강율 내 남자 만들기”가 전부다. 결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결혼만 해주면 “오지 탐험가”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하기로 한다.

결혼 적령기에 성인 여성이라면 머리 싸매고 누웠어야 할 시댁과의 관계, 직장 문제, 육아, 장대한 커리어를 버리고 종부로써 투신할 수 있는가는 처음부터 그녀 나이대의 고려 대상이 아니니 갈등 요소가 돼지 못한다. 어리기 때문에 세상의 시선은 한 없이 너그럽다. 어렵기만 한 종가 어른들도 시누이들도 그녀의 행동하나하나에 귀엽다고 기특하다고 까무러친다. 그녀는 어린다는 것이 마냥 불편해 어른들 위치로 뛰어오르고 싶어하나 그녀가 생각하는 어른 되는 법은 아줌마 파마를 하는 정도로 피상적이다.

선우린을 축으로 한 세계는 완벽하게 순정 만화의 그것과 일치한다. 하지만, 선우린이라는 점을 벗어나면 순정 만화 대신 TV 홈 드라마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남주인공의 손쉬운 갈등 코드로 아버지의 불륜을 선택한다. 종손인 아버지는 신여성과 바람 나 딴 살림을 차리고 아버지의 등만 바라보고 살던 어머니는 종부로써의 역할만 묵묵히 행하다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 아들은 이 때문에 아버지와 갈등을 빚는다. (하지만, 결말에 이르면 가족주의를 내세워 손쉽게 화해한다.)

채영은 가족 드라마의 옵션처럼 따라붙는 집안이 정해놓은 유사 정혼녀로 그녀는 정혼녀들의 단골 대사인 “나는 오빠만 바라보고 있었는데……왜 나는 안돼?”를 외쳐도 결혼 방해 공작 음모를 꾸며도 별다른 존재감이 없어 더 슬픈 캐릭터다. 작가는 완벽한 종부의 조건(결혼 적령기, 교사, 비슷한 종가 집안)을 갖춘 채영과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선우린(어린 나이,백수,종가 집안의 머슴)의 대립을 통해서 종부는 능력이 아니라 하늘이 내려주는 것이다라는 논리에 설득력을 부여하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기에는 에피소드가 단편적이다.

왕자와 종손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천양지차이지만 한 집안을 이끄는 대표로, 가부장제의 정점에 서 있다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는 공통점이다. 왕자(종손)는 개인 이전에 국민(집안) 모두의 공동 소유물이며 철저하게 자신을 죽이고 대의를 위해서 헌신 해야 하는 역사적 사명감을 갖고 이 땅에 태어난 종족들이다. 이런 특수한 신분을 타고난 사내와의 로맨스를 그리려면 초점은 차별화 된 신분과 배경(종가)에 맞춰야 공감대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선우린은 종부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체 종가에 내려와 즐겁게 놀다가 갑작스레 종부라는 위치가 주는 중압감과 자신의 꿈 때문에 강율의 곁을 떠난다.

소설의 클라이맥스임에도 불구하고 자아를 찾겠다며 떠난 선우린의 행동이 사춘기 소녀의 변덕 수준 정도로 해석되는 것은 앞서 적절한 원인 제시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선우린의 감정에 독자를 공명 시키려면 막연한 소녀적 두려움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가족 전체를 위해서 살수 밖에 없는 강율의 숙명과 이 때문에 여주인공이 겪는 소외감, 개인의 삶이 허락되지 않는 종부의 일상 등에 대해 언급이 이뤄져 한다. 또한, 종가 자체에 독자들이 미혹될 수 있도록 세련되게 포장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우리는 낭만의 동의어로 느끼는 영국 귀족이나 아라비아의 셰이크의 현실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속아준다. 낭만성을 창조하는 것은 현실이 아니라 글이다.) 흠 잡을 데 없는 연인, 매력적인 지위와 생활 환경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여주인공의 행동이야말로 파급력을 가지고 올 수 있다.

작가가 온전히 희생적 사랑과 개인적 자아 사이에서 방황하는 여주인공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면 반대로 종가의 어려움을 진실성을 담아 가감 없이 표현했어야 옳다. 단순히 종가의 살림 규모를 늘어놓거나 시제(時祭)에 대한 단편적이 묘사만으로는 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종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호소하는 격밖에 안된 다.

청춘학원물 수준의 로맨틱 코미디, 후반부의 빈약한 파급력과 더불어 이 소설의 문제는 자아 성장의 부재다. 선우린은 미래의 꿈을 위해서 강율과의 이별을 선택했다가 뒤늦게 그의 진심을 알고 되돌아오는데 이 일련의 과정이 결말 짜맞추기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은 선우린이 여전히 소녀에 머물기 때문이다. 강율과의 이별이 기폭제로 작용해, 선우린이 여성으로 성장해야 하는데 소설에는 그것이 없다.

누군가의 배우자가 된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삶의 일정 부분을 내어준다는 의미다. 단순히 입에 발린 “사랑한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이 복잡다단한 세계도 순정만화 캐릭터 앞에서는 별 의미가 없는 듯 선우린은 남편의 배려로 오지탐험가의 꿈을 기어코 이룬다. 이 시점에서 그녀가 종부인지 남편이 종손인지는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선우린은 앞서 나이 많았던 언니들이 눈물깨나 흘렸던 자아 실현, 시댁 갈등 등을 어린 나이 하나만으로 가뿐히 해결한다. 소녀시절과 달리 어린 나이가 무기도 특권도 아니라는 것을 아는 필자로써는 어린 나이로 모든 것을 넘어가주는 책 속 논리가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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