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지만 내가 제일 소중해’얼어죽을 놈의 나무

‘얼어죽을 놈의 나무’ 연두

얼어죽을 놈의 나무
Title: 얼어죽을 놈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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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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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살 동갑내기 친구 진혁과 나무. 진혁은 19살 때부터 나무를 짝사랑해 왔다. 7년 동안 호시탐탐 기회만 보던 진혁은 장기간 유학으로 나무와 이별이 불가피하자 음모를 꾸며 나무와 동거를 시작한다. 동거 후 마침내 친구의 경계를 넘어 연인이 된 두 사람. 진혁은 나무에게 청혼을 하지만 나무는 자신의 생활이 속박될 것이 두려워 청혼을 거절한다.

여주인공 나무는 요즘 대중 매체에서 흔히 그려지는 “지독하게 이기적이거나 혹은 자신을 가장 사랑한다는” 현대 여성이다.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나이기 때문에 연애는 언제든지 예스라도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침해 할 수 있는 결혼은 노다. 작가는 작품 후기에 “사랑은 삶에서 몇 퍼센트를 차지하는 것이며 사랑이란 이름은 어떤 행동까지 용납할 수 있느냐” 는 의문의 대해 해답을 찾으려 노력했다고 밝히는고 있는데 이 작품은 작가의 의도만 가지고 살피기에는 너무 많은 감정의 불순물이 혼재해 있다. 작품 전반을 차지하고 있는 불행한 가정사와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에 대한 증오에 가까운 반발심 때문이다.

여러 면에서 실제 작가가 오버랩 되는 나무라는 캐릭터는 지나칠 정도로 피해 의식에 젖어있다. 아버지는 무능력한 노름꾼으로 나무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으며 어머니는 전화를 걸어 신세한탄을 늘어놓거나 딸을 아버지의 노름빚을 갚는 돈주머니쯤으로 취급한다. 나무에게 불우한 가정은 트라우마다. 그녀는 자신이 불행한 가정사를 무기 삼아 손쉽게 분노를 토해내고 이를 정당화한다. 딸의 등골이나 빼먹는 무능한 아버지에 대한 분노는 남성중심사회에 대한 증오로 손쉽게 치환된다.

그녀는 진혁과의 사랑은 좋지만 결혼 때문에 자신의 삶의 방식이 흔들릴 위기에 처하자 자신을 남성중심사회이자 가부장적 사회인 한국 사회의 희생양으로 자위하며 주변에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이기적이라구? 뭐가 이기적이야? 내가 원하는 대로 살겠다는 게 그게 이기적이라는 거야? 네가 네 방식대로 결혼하자고 하는 건 이기적이지 않고? 너야말로 네 틀 속에 날 끼워 넣고 싶어 하는 거잖아.” “제사 때 가서 좆 나게 일하고 나면 그 다음은 뭔데? 애새끼를 위해서 담배를 끊으면 그 다음은 뭔데? 네 뒷바라지 위해서 내 그림은 취미로 하는 거? 그게 그 다음이야. 또 그 다음이 뭔지 알아? 그렇게 살다가 그 어느 날 뒤돌아보면 난 네 집안 똥구멍 닦아주는 휴지가 되어 있겠지”, “세상 여자들이 다 겪는 거라구? 그래서 별거 아니니까 감수하라구? 넌 내가 바보로 보여? 바보로 보이냐구!!” 식의 대사는 개인적 한풀이성 대사로는 적합할지는 몰라도 상대 남성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일방주의적 시점으로 쓴 것에 불과하다. 이런 주장에는 늘 “한국에서 결혼은 남성에게만 이득이다”라는 근거 없는 전제가 깔려 있기 마련이다.

자신이 한치도 틀리지 않다고 믿는 것 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나무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단 한치의 의심도 없기 때문에 자신을 손쉽게 가부장적 사회의 피해자의 위치에 올려놓고 모든 이들을 내려다본다. 미래 시어머니와의 면담 과정에서 “곧 있으면 아이를 가져야 할 몸인데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하자 속으로 “도대체 아이를 가진다고 말한 적도 없는데 당연히 애를 낳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웃기거니와 담배가 아이한테 안 좋은 것 이전에 그녀 몸에 더 안 좋은데 아이 건강부터 걱정하는 건 뭐란 말인가?” 항변하는데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인가? 자신은 단 한번도 시어머니 입장에서 결혼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으면서 시어머니가 자신의 입장에서 봐주지 않는다고 떼 쓰는 격이다.

진혁은 나무의 주변 남자들이 그녀와 가까워질 일이 생기면 득달같이 달려나가 그들은 제거한다. 하지만, 이런 방법을 통해서도 연인의 선을 넘지 못하자 나무의 영원한 트라우마인 아버지를 이용할 생각을 한다. 평소 노름판을 전전하는 나무의 아버지를 경찰에 밀어넣으면 나무가 보석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원룸 전세금을 뺄 테고 갈 곳이 없어진 그녀는 결국 자신과 동거하게 될 것이란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한국 로맨스 속 한국 여자들이 이기적이 될수록 한국 남자들은 찌질 해져 간다.

나무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나무이기에 진혁은 그녀를 사랑하려면 희생을 강요 당할 수 밖에 없다. 재벌의 후계자인 자신에 비해서 나무의 조건이 너무 기울자 결혼을 허락 받기 위해 그는 원치 않는 가업을 이어받기까지 한다. 하지만 여러 진혁의 희생에 대해서 나무는 단 한 번도 감사의 마음을 품지 않는다. 사랑이 죄인가? 진혁에게 사랑은 죄다. 진혁은 나무를 사랑한다는 이유 만으로 나무로부터 듣는 모든 모욕과 분풀이를 감수한다.

애초부터 이 사회는 가부장적 사회이니 여성인 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피해자이므로 남자인 너는 영원히 나에게 죄스러워 해야 한다는 억지 논리가 아니고서야 이것이 말이 되는가? 진혁은 자기 좋자고만 하는 나무에게 “젠장 내가 미쳤지 너 같은 여잘 좋다고..어휴…”라는 대사를 하는데 정말 이 둘의 관계는 한쪽이 미칠 만큼 희생하지 않고서는 이뤄질 수 없는 연애다.

또한 둘의 연애는 일견 나무가 그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모든 것을 진혁이 “나무를 약자” 로 생각하고 배려해 주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진혁은 인내심의 한계치를 느끼자 맨 처음 한 행동이 나무를 성적으로 제압하려 한 일이다. “내가 널 모른다고? 너야말로 날 모르고 있어. 도대체 넌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네 손에서 맘대로 쥐었다 폈다 할수 있다고 생각하나 본데.” 라며 바지 버클을 푸는 진혁 앞에서 육체적인 약자인 나무는 손쉽게 무너진다.

나무는 진혁과 결혼해서 사는 것도 맘에 들지 않고 하나하나 개입 당해 가며 그 집안 며느리 노릇 하기 싫어서 결국 진혁과 헤어진다. 하지만 진혁을 잊지 못하고 있기에 유학간 진혁을 찾아간다. 타협 점을 찾지 못하고 팽팽히 맞서던 그들은 결국 진혁이 “가는데 까지 가보자”며 한 발 물러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동거를 한다.

평소 아이가 자신의 삶을 침해한다고 생각하던 나무는 진혁이 사고를 당하자 만약의 사태에 그의 분신이라도 갖겠다는 심정으로 ‘결혼이 없으면 아이도 없다’는 진혁의 의사를 무시하고 임신을 해 쌍둥이를 낳는다. 남은 없고 오직 나만 소중한 나무의 이기적인 행각은 끝까지 계속된다.

특히 마지막 문장은 작가의 생각에 동조했던 이들이라도 일순간에 허탈하게 만들만하다. “사실 결혼만 안 했을 뿐이지 거의 결혼한 부부의 삶과 다를 바가 없었다. 진혁이 본가에 자신의 공간을 두고 있었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나무의 집으로 퇴근을 했고 생활비며 양육비도 그가 부담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나무가 살림만 하느냐 천만에 말씀 만만에 콩떡이었다. 그의 돈으로 버젓이 아줌마를 쓰고 지는 유학 가겠다고 일한 돈을 차곡차곡 모으고 있었다.” 이것이 진정으로 작가가 내내 가부장제의 희생양임네 하고 울부짖었던 결과인가? 결혼에서 오는 책임을 싫고 달콤한 과실만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사랑하는 남자와도 살고 싶고 아이도 키우고 싶고 자신의 꿈도 펼치고 싶다. 하지만 시부모님은 노 땡큐이며 제사 같은 건 신경도 쓰고 싶지 않다. 아이는 자기가 낳고 싶어 낳았으면서 아이를 키우는데 드는 양육비나 생활비는 남자에게 받아쓰고 돈 번다는 이유로 살림도 안하고(가사대체비용도 당연히 남자 주머니에서 나온다.) 적당히 때 되면 남자에게 아이 맡기고 유학 가겠다는 여주인공에 비하면 돈 때문에 결혼했다며 남자에게 아양을 떠는 여자들이 덜 위선적이다. 나쁜 여자는 자신의 밥값은 자신이 낸다.

“왜 자유롭게 그냥 동거하면 안 되냐고. 아..젠장 왜 남자 때문에 생활방식까지 바꿔야 하냔 말이야. 시댁 식구며 집안일 챙기는 것과 아이 양육 같은 걸로 인생을 채우고 싶지 않다”고 울부짖는 나무의 외침은 그래서 더 공허하다. 남은 없고 오직 나만 있다. 작가가 후기에서 “사랑이란 이름 속에 수 많이 들어 있는 인간적 고뇌와 현실의 문제 그리고 서로의 환경에서 오는 문제들 현실을 기만하지 않는 글을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두 사람이 어떻게 사랑이란 걸 삶에서 풀어 가는 지가 그 지점이 저에게 중요했습니다.” 라고 밝힌 것과는 무색하게 작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두 사람이 아니라 한 명을 위해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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