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판 제인 오스틴의 설득” 설득

Persuasion (1995)
107 min|Drama, Romance|27 Sep 1995
7.7Rating: 7.7 / 10 from 8,758 usersMetascore: N/A
Eight years earlier, Anne Elliot, the daughter of a financially troubled aristocratic family, was persuaded to break off her engagement to Frederick Wentworth, a young seaman, who, though ...
스포일러
분수에 맞지 않는 사치를 즐기던 준 남작 월터 엘리옷경은(코린 레드그레이브) 채권자들에 시달리게 되자 셰퍼드 변호사와 오랜 친구인 레이디 러셀과(수잔 플랫우드) 상의 끝에 크로프트 제독(존 우드바인)에게 켈린치홀을 세주고 바스로 간다.

뒷정리가 맡겨진 둘째 딸 앤(아만다 루트) 짐 정리를 하다가 과거 연인인 프레데릭 웬트워스(키애런 하인즈)의 편지를 발견하고 회한에 젖는데 그는 이제 이사 올 크로프트 부인의 막내 동생이어서 만남이 불가피 하기 때문이다.

8년 전 19살 시절 앤은 젊은 해군 장교인 프레데릭 웬트워스에게 청혼을 받았지만, 엘리옷경과 레이디 러셀은 프레데릭의 신분이 상대적으로 보잘 것 없다며 결혼을 만류하고 이에 설득당한 앤은 프레데릭의 청혼을 거절한 바 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어 앤은 나이 많은 노처녀에 불과하지만 프레데릭은 대령에 자리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사략선의 선장으로 이만 오천 파운드에 해당하는 재산을 모았다. 앤은 바스로 떠나기 전 막내 동생 메어리를 돌봐주기 위해 켈린치홀의 이웃인 어퍼크로스에 머문다.

머스그로브가의 장남인 찰스에게 시집 간 메어리는 늘 자신이 병들어 있는데도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는다며 불평을 늘어놓는다.머스그로브 일가는 새로 이사 온 크로프트 제독과의 새로운 친교를 환영하고 찰스의 두 여동생 헨리에타와 루이자는 프레데릭 대령에게 열을 올린다. 모두에게 친절한 프레데릭 대령은 오직 앤 에게만 차갑게 대해 그녀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맨스필드 파크》와 함께 제인 오스틴 사후에 발표된 소설인 《설득》을 BBC에서 TV용 영화로 제작한 작품으로 《노팅힐》로 유명한 로저 미첼의 장편 극영화 데뷔작이다. 같은 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오만과 편견》시리즈보다 앞서 1995년 4월 16일에 방영된 바 있다. 국내에는 EBS의 명작극장을 통해서 2007년 3월 31일에 방영됐다.

원작 《설득》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 중 가장 로맨스의 비중이 높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제인 오스틴이 27살이던 때 라임에서 신원미상의 남성과 사랑에 빠졌는데 이 연애는 상대 남성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좋지 않게 끝났다. 후세 사람들은 이 때 사랑을 잃은 제인 오스틴의 자전적 경험이 소설에 그대로 반영되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하고 있다.

앤 역을 맡은 아만다 루트는 《설득》이 첫 주연작으로 당시 33살이었다. 웬트워스 대령 역의 키애런 하이즈(훗날 TV시리즈 로마에서 줄리어스 시저역을 하는 등 중량감 있는 연기를 주로 하는 배우)는 43살이어서 원작보다는 상당히 노숙한 배우들이 남녀주연을 맡은 셈이었다.

남녀 주인공만 빼면 영화는 원작에 상당히 충실할 뿐만 아니라 매체적 장점을 잘 살린 수작이다. 각 계층을 대표하는 세 가족 – 켈린치홀로 상징되는 귀족, 젠트리인 어퍼크로스의 머스그로브 일가, 전문 직업 계층인 라임의 하빌 대령 가족의 계층적 특징을 소품 하나하나까지 잘 살려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제인 오스틴도 울고 갈만한 세심한 시선으로 주변인들까지(크로프트 제독의 선상 생활이나 당시 하인들의 시선) 한 화면에 꼼꼼하게 담아냈다.

감독은 앤의 신분에 세심한 주위를 기울여 오직 결혼만이 여성의 미래로 한정됐던 가부장제적 시대의 우울한 여성상으로 여성 관객들에게 감정이입을 유도하고 이를 이용해 현대 관객들에게도 친숙한 전세가 역전된 연인 이야기로 극을 이끌어 나간다.

가부장적 사회 하에서 앤은 자신을 보호해줄 남편이나 아버지가 없기 때문에(아버지는 앤의 외모가 아름답지 않다는 이유로 그녀의 존재를 인정 하지 않는다.)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그녀를 찾을 때는 그녀가 집안 대소사를 처리하고 아이를 돌봐주거나 자신들의 불평을 털어 놓는 등 필요할 때 뿐이며 결코 정서적 유대감을 나누는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

그녀가 8년 동안 젊음을 잃을 동안 상대적으로 프레데릭은 여전히 남성적 매력을 소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부유한 신사가 되 앤보다 더 어린 여성들의 유혹을 받는다.  소설은 비교적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1,2부로 나뉘어 있는데 1부는 생기를 잃은 회색 빛의 앤과 과거에 대한 앙금으로 그녀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려 하나 여전히 그녀가 신경이 쓰이는 프레데릭의 미묘한 심리 전개가 주를 이룬다.

극은 앤 일행이 라임 지방으로 여행을 가는 것으로 전환기를 맞는데 앤은 라임의 상쾌한 바다 바람에서 잃어버렸던 생기를 되찾는다.(처음 프레데릭과 재회한 뒤 그의 “앤의 모습이 너무 변해 알아볼 수 없었다”라는 말을 전해 듣고 쓸쓸하게 거울을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는 장면과 라임의 여관에서 자신감에 차 거울을 보는 장면은 앤의 변화 된 심리상을 반영한다.)

프레데릭은 한 남자가 앤을 넋 놓고 바라보는 걸 보고 질투심을 느끼고 문제의 남자는 엘리옷가의 추정상속인 (대를 이을 아들이 없을 경우 아들을 얻기 전까지 친척 남성이 상속인이 된다.) 윌리엄 엘리옷으로 밝혀진다.

앤은 라임에서 외모상으로 프레데릭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을 뿐만 아니라 루이자가 심각한 부상을 입었을 때 침착하게 대처해 정신적으로도 성숙했슴을 증명한다. (앞서 앤이 지성미로 벤윅 대령을 사로잡자 프레데릭은 이 또한 질투를 느낀다.)

앤과 프레데릭이 대등한 위치가 됐음은 프레데릭이 앤과 루이자를 어퍼크로스에 마차로 데려다 주는 장면에 잘 드러나는데 프레데릭이 계속해서 자책을 하자 앤은 루이자가 다친 것은 그가 부추김 때문이라는 것을 암시하며 질책하고 프레데릭은 격한 감정에 험한 말을 내뱉는다.

영화는 앤이 라임에서 건강을 되찾은 후 바스의 가족들과 합류한 시점에서부터 원작과 달라진다. 원작에는 좀 더 숨겨져 있던 로맨스가 한층 강렬해졌으며 더 극적으로 재구성됐다.

원작에서 앤이 메어리의 편지를 받고서야 프레데릭과 루이자가 결혼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영화에서는 앤이 라임을 방문한 크로프트 제독과 산책을 하다가 소식을 듣는 것으로 처리됐다.

앤이 음악회 도중 주변인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음악회장을 뛰쳐나가 급히 떠나는 프레데릭을 붙잡거나 광천수를 마시는 곳에서 프레데릭이 앤을 찾아와 윌리엄 엘리옷과의 결혼 소문을 들었다며 언제든지 켈린치홀을 비워주겠다는 매형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도 원작에는 없는 BBC판의 첨가다.

BBC판의 가장 획기적인 시도는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말 없이 키스하는 장면인데(설득에 대한 앤과 프레데릭의 길고 긴 대사를 모두 잘랐다.) 영상화 된 제인 오스틴 작품 중 최초의 키스 신으로 당시 언론에서는 이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고 한다.

프레데릭이 하빌 대령을 대동한 채 카드 파티 모임에 나타나 당당하게 청혼하는 장면도(오스틴 순수주의자 들이었다면 시대예법에 맞지 않는다고 분개할만한 설정이다.) 희망에 차 바다로 나아가는 장면도 오직 BBC판에서만 볼 수 있다.

1시간 47분이라는 결코 길지 않은 시간에 현대 관객의 구미에 맞을만한 현대적 각색과 고증으로 매력적인 러브 스토리로 재탄생 했으며 1996년 BAFTA(영국 영화TV 아카데미)에서 베스트 싱글 드라마,베스트 촬영상,베스트 의상상,베스트 음악상,베스트 디자인상을 수상했다.

영상화 된 모든 제인 오스틴 소설이 그러하듯 러브 스토리를 위해서 제인 오스틴의 이상은 과감히 희생했다는 것은 여전히 아쉬운 점이다. 제인 오스틴은 조건과 사랑이라는 문제 뿐만 아니라 영국 가부장제 아래서 절대적인 권위를 행사하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도 비판하고 있는데 이상적 부부 관계를 상징하는 크로프트 제독 부부의 면모가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분명 BBC는 시간 속에 고전이란 이름으로 박제될 뻔한 제인 오스틴이란 이름을 그 어느 작가보다 영상 세대들에게 친숙하게 만든 공이 있다.  BBC의 전략대로 제인 오스틴은 인기 인물이 되었지만(2006년 영국에서 조사한 위대한 작가 설문 조사에서 셰익스피어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이것이 진정으로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 제대로 평가 받는 길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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