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로맨스의 미래는 칙릿?’ 봄빛 스캔들

‘봄빛 스캔들’ 리사 클레이파스

봄빛 스캔들
Title: 봄빛 스캔들
Original Titles: Scandal in Spring(2006)
Genre:
Series:
Series Number: #4
Publisher:
Published: 2006
Awards
  • 2007년 Rita Award Short Historical Romance 부문 파이널리스트
월플라워(Wallflowers)
  1. Again the Magic,2004
  2. Secrets of a Summer Night, 2004: 여름밤의 비밀(라임북스)
  3. It Happened One Autumn, 2005 : 가을날에 생긴 일(라임북스)
  4. Devil in winter, 2006 : 겨울을 닮은 악마(라임북스)
  5. Scandal in spring, 2006 : 봄빛 스캔들(라임북스)
  6. A Wallflower Christmas,2008

리사 클레이파스가 《여름 밤의 비밀: 이하 여름》로 ‘월플라워스 시리즈’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 시리즈는 그 동안 저자의 다른 작품과는 차별화된 신선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박제된 로맨스가 아니라 200여 년이란 시간차를 두고도 현대 여성과 빅토리아 시대 영국 여성들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거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리즈의 뒤로 갈수록 이야기는 과거 리사 클라이파스표 낭만적인 동화로 채색되고 있다. 어설픈 영국 귀족 비판기인 《가을날에 생긴 일: 이하 가을》을 지나면 《겨울을 닮은 악마: 이하 겨울》는 과거 영광작에 대한 노골적인 자화자찬이다. 과연 시리즈의 마지막인 《봄빛 스캔들》(Scandal in Spring, 2006)에서 저자는 어떤 결정을 했을까? 안정일까? 변화일까?

건재한 슈가러쉬

가문의 뼈대를 세워줄 신랑감을 찾아온 미국인 보먼 자매. 언니 릴리언은 사교계 최고의 대어라 할만한 웨스트클리프 백작 마커스를 낚아챘으나 동생 데이지는 몇 시즌 동안 별다른 성과가 없자 성미 급한 아버지는 데이지에게 5월말까지 청혼을 받지 못하면 자신이 정해준 상대와 무조건 결혼하라는 최후 통첩을 한다. 여기서 잠시 기억을 더듬어 데이지의 이상형을 찾아보면 1권 《여름》에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난 셰익스피어의 전 작품을 다 읽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요. 조용하고 낭만적이고 – 안경을 꼈으면 더 좋겠고 – 시와 자연을 좋아해야만 해요. 그리고 너무 여자 경험이 많은 건 싫고”

봄빛스캔들지금까지 ‘월플라워스 시리즈’에서 여주인공들은 모두 자신의 이상적인 결혼상대와는 정반대의 인물과 짝지어졌다. 오직 귀족을 원했던 애너벨은 푸줏간 집 아들 사이먼에게 거친 반항아 타입을 찍었던 릴리언에게는 모범생 마커스를 자신만 사랑해주길 바랬던 에비에게는 계약 결혼을 선택하게 했지 않은가? 데이지는 3권 《겨울》에서 집시 남자 캠 로한과의 은밀한 키스로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갖게 했으나 꿈꾸는 소녀와 집시의 결합은 너무나도 모범적인 답안이다. 수 많은 독자들을 낚아 올렸을 이 매력적인 남자는 저자의 후속 시리즈 헤서웨이 시리즈의 1권 《Mine Till Midnight, 2007》의 주인공으로 재등장한다.

낭만적이 데이지에게는 지극히 현실적인 – 아버지를 똑 닮은 남자가 떨어지리라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고 그래서 불려 올려진 것이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부하직원 매튜 스위프트임을 예측할 수 있다. 로맨스 법칙을 더듬어 보면 데이지와 매튜는 필연적으로 상대를 싫어해야 하고(그렇게 여겨져야 하고) 매튜의 재등장에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서 과거의 그를 최소한의 보호막인 까칠한 미남부류도 아닌 ‘생김새는 자루에 뼈만 담아놓은’ 남자로 설정해 놓는 것이 당연지사다. 더 이상 뼈다귀도 아니고 매력적인 외모에 호감 가는 성격을 가진 능력 있는 사업가 매튜가 예상을 깨고 데이지와의 결혼을 열렬히 바라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뒤늦게 매튜의 진면목(과 더불어 매력적인 외모)를 알아차린 데이지는 그를 유혹하기 위해서 애쓰고 저자 특유의 진한 스킨십이 도처에서 등장한다.

역사 로맨스의 미래는 칙릿인가?

소설의 배경이 되는 1840년대는 귀족 대신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신흥 부르주아 계급이 본격적으로 부상하는 시기다. 저자가 이 시대에 대해 지지하는 입장은 현대 미국 시민 사회의 근본일 수 있는 영국 중산층의 이데올로기로 그녀는 혈통 하나만 믿고 시대변화에 뒤쳐진 채 방탕한 생활을 하는 귀족들에 대해 노골적인 반감을 들어내며 대신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이루는(아메리칸 드림)을 남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여름》의 사이먼이 그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로맨스 소설에서 귀족 남성이란 역사 로맨스 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흥행 요소이자 매력적인 왕자님(prince charming)으로 대변되는 궁극의 남주인공인 동시에 미국인 저자들이 가지고 미국적 시민 사회의 자부심과는 정면으로 대치되는 아이러니한 존재이다. 많은 미국 로맨스 작가들은 귀족 남성에 대해서 애증적인 입장을 취하는데 저자 역시 그러하다.

《가을》은 이런 이중성이 가장 많이 투영된 소설로 저자는 영국식 귀족 사회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찬 무대를 꾸며놓고 정작 미국인 여주인공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신분사회에 대해 비판을 늘어 놓는다. 결말에는 최상위 귀족인 백작과 그녀를 맺어준다. (로맨스 소설에 백작이 흔히 등장해 귀족의 대명사처럼 되어 버렸지만 실제 백작은 수는 그리 많지 않다. 백작 정도의 칭호를 받으려면 어떤 식으로든 왕가와 연결이 되는 왕족이다.)

《겨울》의 남주인공은 한 단계 더 나가 허세만 부리는 귀족에서 가장 하층의 천한 직업이라 할 수 있는 도박장을 운영해 밥벌이를 하는 것으로 성장한다. 막연한 영국에 대한 동경 대신 미국인 작가들이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까?

《봄》에 이르면 완성형 아메리칸 드림형 캐릭터인 매튜가 등장해 기존 로맨스 소설의 돈에 대한 불문율 –어느 장르보다 금권주의적 장르나 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천박하다고 여긴다 –에 대해서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

“내가 언제 사치를 누리고 싶다고 했나요? 내가 바라는 건 단지 평화로운 생활뿐이에요”
“서재에 홀로 앉아서 책만 파는 것 말입니까?”
매튜는 유쾌하지 못한 어조로 따져 물었다.
“정원을 한가롭게 산책하거나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것 말인가요?”
“그래요!”
“책은 비싸지요. 정원이 딸린 근사한 저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의 평화로운 생활이 가능 하려면 누군가가 그 돈을 대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던가요?”

최근 칙릿이 여성들의 욕망을 솔직 가감하게 드러내 인기를 얻는 것처럼 역사 로맨스 소설의 여주인공들도 더 이상 자신들의 ‘소박한 욕구’가 소박하지 않음을 돈이 인생을 멋지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시점이 왔다. 이제 우리의 여주인공은 과거와 달리 무대만 19세기인 현대 여성들처럼 매 순간 패션에 열광하고 명품숍을 순례하고 남주인공의 조건에 대해 귀를 쫑긋 이게 될까?

《봄》의 마지막 장면에서 네 명의 월플라워들이 모여 남편감을 못 구했던 자신들의 암울한 과거 대신 달라진 위상에 만족감을 드러내며 축배를 올리는 흡사 여느 칙릿의 한 장면 같다. 우리는 그 동안 역사 로맨스의 변화를 요구해 ‘리젠시 로맨스’를 로맨스 장르에서 퇴출시켰고 마차와 드레스만 입으면 만사 오케이 인 ‘히스토리컬 로맨스’를 메인스트림으로 부상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히스토리컬 로맨스’ 조차도 식상해지자 최근에는 칙릿이 그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모양새다. 무비판적인 칙릿식 전개 수용이 역사 로맨스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봄》을 끝으로 ‘월플라워스’의 계절 연작 시리즈를 끝을 맺었으나 2008년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노벨라(Novella: 중. 단편 분량의 로맨스 소설을 모아놓은 형태)인 《A Wallflower Christmas》가 출간 될 예정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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