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의 정령이 없는 늑대의 정령 이야기’ 늑대의 정령

‘늑대의 정령’ 이미강

늑대의 정령
Title: 늑대의 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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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2007

국내에서는 희귀한 패러노말 로맨스다. 패러노말이란 말 그래도 과학적으로 입증되지는 않았으나 존재한다고 믿는 요소들로 – 악마,흡혈귀,늑대인간,초능력,마녀,유령,시간여행,미래,미지의 별세계 등- 이를 로맨스에 소재로 삼은 것이다. 초기인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시간여행 로맨스, 미래 로맨스 – SF 요소를 도입한 로맨스 – 등이 주류를 이루다가 2000년부터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이 급상승해 요즘은 제인 캐슬(제인 앤 크렌츠의 미래 로맨스 필명),수잔 그랜트 같은 몇몇 작가를 제외하고는 순수한 미래 로맨스를 쓰지 않는다.

패러노말 로맨스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우선 위에서 언급한 패러노말 요소에 대한 문화적 토양에 마련 되야 함을 물론이요 더불어 밑바탕이 되는 스릴러,미스터리,칙릿 등의 장르적 이해가 뒷받침 되야 한다. 패러노말 로맨스 초기 시절, 시간 여행 로맨스나 미래 로맨스 양쪽 모두 좀 더 색다른 연애 장소(혹은 색다른 남자 주인공)를 제공하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을 정도로 고전적인 역사 로맨스 플롯을 그대로 따랐으나 한계를 인식하고 장르가 발전할수록 스릴러,미스터리,칙릿,판타지 등의 다양한 형식으로 변주하기 시작한다.

스릴러를 기반으로 한 미래 로맨스인 제이 디 롭(J.D Robb : 노라 로버츠의 다른 필명)의 이브 달라스 시리즈는 1995년에 첫 권이 나온 이래로 RWA와 로맨틱 타임즈를 독식할 정도로 완성도를 인정 받았으며 로맨스적인 요소는 약하지만 로맨스,호러,SF가 뒤섞인 로렐 K.해밀튼의 뱀파이어 헌터 애니타 블레이크 시리즈 또한 훌륭한 패러노말 로맨스 시리즈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2000년대 이후부터는 셰릴린 케년의 다크헌터 시리즈,크리스티 피한의 다크 시리즈,안젤라 나이트의 마스터 시리즈,J.R.워드의 블랙 대거 시리즈,메기 쉐인의 트왈라이트 시리즈 등이 그 뒤를 잇고 있으며 십대용 로맨스인 스테프니 메이어의 《뱀파이어 연인》 시리즈 또한 패러노말 로맨스의 훌륭한 전범으로 삼을 만하다.

패러노말 로맨스의 국내 도입이 어려운 것은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요소- 문화적 토양과 하위 장르 문학 양측면에서 취약하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동안 전통적인 로맨스 플롯은 번역 역사 로맨스나 할리퀸을 통해서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렀으나 스릴러,미스터리,칙릿,판타지 등은 이 장르를 전문으로 하는 국내 창작 집단조차 소규모일정도 국내에서는 비활성화 돼있다.

그나마 부족한 양분을 채워진 것이 국내 몇몇 순정만화와 할리우드 영화와 번역 소설인데- – 문제는 만화의 경우는 만화를 그린 작가의 장르적 지식 부족으로 모범 텍스트로 삼기에 자격미달이며 해외 영화나 소설의 경우는 표절의 오해를 살만큼 설정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해외의 장르 작가들의 경우에도 표절 의혹을 살까 봐 비슷한 소재가 등장하는 소설을 처음부터 읽지 않는다고 말하는 작가들도 부지기수일걸 보면 영향력을 절대 무시하지 못한다.

그네들은 대신 부족한 지식을 관련 전문 서적에서 뽑는다. 우리는 그 흔한 뱀파이어나 늑대 인간에 관한 글을 쓰고자 해도 교과서로 삼을 만한 책이 거의 전무하다. 상대적으로 해외 작가들은 해당 분야의 소설도 많고 전문 서적도 많다. 더불어 그들은 전세계 자료의 80%이상을 차지하는 영어에 능통한 민족이다. 장르라는 것은 세대간의 계승(장르의 노하우)이라는 것이 무시할 수 없는데 앞서 언급했듯 국내는 볼모지 이기에 역사 로맨스,현대 로맨스,패러노말 로맨스로 이어지는 장르 발전 단계를 단 번에 뛰어넘어야 한다.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이미강의 《늑대의 정령》를 보면 그 답이 어느 정도 보인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소설은 늑대 인간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전설 속 늑대 인간 대신 과학 잡지에 종종 실리는 “흡혈귀가 사실은 광견병 증세를 오해한 것” 같은 이색 논문의 방식을 따르고 있다.

오래 전 부모를 잃은 인간들을 늑대가 키웠고 늑대에게서 자란 인간들이 늑대의 생활 방식을 그대로 따라 일족을 이룬 것이 코니 아커스족 다시 말해 늑대 인간(늑대씨족)이란 말이다. 작가는 신빙성을 더하기 위해 성적 암시가 풍부한 《빨간 모자》 민담부터, 늑대가 인간을 키운 실제 사례 등을 인용했으며 허구인 늑대씨족의 행태의 대해서도 세심하게 묘사해 지구상 어딘가의 그들이 실제 한다는 믿음을 주려 애쓴다.

늑대씨족이 일반 인간보다 힘이 센 이유라든가, 후각이 발달한 이유, 보름달에 뜨면 공격성이나 성적 본능이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묘사는 실제 알려진 늑대 인간 전설과 맞물려 재미를 준다. 하지만, 미국 패러노말 로맨스가 초기에 가졌던 문제 – 색다른 장소 연애 장소나 성적 테크닉이 뛰어난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것 외에는 플롯이 동일해 타 하위장르와의 차별성이 없다.

소설의 플롯과 캐릭터는 유행 지난 할리퀸과 만화,역사 로맨스의 이종 교배물 같다. 진은 처음부터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후각 능력, 한 밤중에 뛰쳐나가 숲을 달리는 기행 성향, 엄청난 식사량으로 범상치 않음이 강조된다. 그녀는 유학오기 10년 전 강도를 당해 그날 있었던 기억을 송두리째 잃은 상태다. 진의 논문에 꼭 필요한 책을 소유하고 있는 잭 울프 역시 진의 냄새를 맡게 해달라고 요청 진의 냄새를 맡게 해달라고 요청해 예사 사내가 아님을 일찌감치 드러내고 진을 자신들의 본거지인 히든 벨리로 데려갈 임무를 구지 숨기지 않는다.

둘은 문제의 책이 있는 히든벨리로 가는데 그곳에는 옵션 같은 친절한 집사와 집사 부인이자 자상한 가정부가 있는 대형 저택이 자리 잡고 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진이 늑대씨족이란 것도 밝혀진다. 둘의 사이는 깊어져 가지만 잭에게는 가문에서 정해준 여자인 사촌 리타가 있고 리타는 진을 질투해 진실을 폭로한다.

80년대 대히트를 쳤던 – 미국인 여성이 알고 봤더니 유럽에 귀족 가문의 유일한 후손이고 가문의 정통 승계자인 남자는 가문의 신성한 피를 유지하기 위해서 여자에게 진실을 알려주지 않고 결혼을 감행한다. 여자는 연적의 폭로로 뒤늦게 남자의 배신에 통곡하며 남자를 떠난다는 플롯이다.

인물도는 또 어떠하냐 면 리타에게는 가문의 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스톰이란 바람둥이 오빠가 있는데 잭 다음의 서열 2위인 그는 진에게 유독 관심을 보인다. 리타는 다른 남자와 통정하면서도 진에 대한 질투에 휩싸여 이라이져와 비슷한 행보를 연출하다가 급기야 진과 화끈한 캣파이팅까지 연출한다. 진이 도망갔다가 잭에게 붙잡혀 끌려오는 것 부터는 린 그레이엄 스타일이다.

강간에 가까운 성 관계가 – “사실 당신도 느끼고 있지 아니라고 말 못하겠지” – 등장하고(강간 뒤에는 사이가 좋아진다.) 여주인공은 자신이 씨받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분노해 “당신이 원하는 대로 창녀가 되어주겠다”고 말하면 남 주인공은 “창녀라도 하려면 제대로 좀 해보지” 같은 대화를 주고 받는 식이다. 현대 늑대씨족의 우두머리이자 잭의 할아버지인 니콜라스의 명으로 리타와 결혼하지 않으면 일족에서 쫓겨나는 잭이 사랑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린다는 건 역사 로맨스의 고전적인 엔딩이다.

소재의 신선함도 중요하지만 스토리도 신선함도 중요한다. 소재가 아무리 신선해도 스토리가 제자리 걸음이면 결국은 동어반복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현재 패러노말 작가들이 스릴러와 미스터리는 물론이여 칙릭까지 차용한 것은 이런 문제를 차단하기 위함이다. 작가는 후기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늑대인간을 재창조하기 위해서 전형성을 의도적으로 역전시켰음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런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작가가 플롯과 캐릭터에는 이토록 무심할 수 있는지 의아스럽다.

꼼꼼한 자료 조사는 좋지만, 스토리와 상관 없는 늑대 이야기가 너무 많이 있다. 배경 스토리는 배경일뿐이다. 작가가 쓰고 있는건 생태학 연구논문이 아니라 소설이다. 로맨스소설에서 쓰고자하는 것은 늑대가 아니라 매혹적인 늑대인간과 화끈한 사랑이어야 한다. 누가 대체 로맨스 소설에서 늑대 관찰법을 읽고 싶어하겠는가? 스토리와 상관 없는 내용을 좀 더 과감히 쳐냈어야 한다.

늑대씨족의 이야기가 결국은 강력한 알파형 남성이 모든 것을 주도하는 이야기라면 또 다른 가부장제 찬양가에 지나지 않아 동시대적 감각을 상실한 우려도 있다. 작가는 아마도 《늑대의 정령》을 시리즈로 구상하고 있는 것 같으니 후속작은 보다 나은 결과물이 나오리라 여겨진다. 그때는 단지 늑대의 일족이 존재한다는 것 이상의 이야기를 들려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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