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모순에 빠진 스토리’ 낭만가정부

‘낭만가정부’ 홍윤정

낭만가정부
Title: 낭만가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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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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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살의 피아노강사 설이랑의 꿈은 독일로 유학 가는 것이다. 유학비용마련을 위해서 그녀는 어머니의 주선으로 세 달에 천만 원이라는 입주 가정부 일을 시작한다. 집주인도 없이 덩그러니 빈집에서 지루한 나날을 보내던 이랑은 절대로 집을 비우면 안 된다는 계약 조건을 어기고 친구를 만나러 나가는데 하필 그 때 문제의 집주인 이산유가 미국에서 귀국한다.

이산유는 18살에 혼자 도미해 에이든 알렉스라는 가명으로 할리우드 인기 작가가 된 입지전 지적인 인물인데 섹스 스캔들을 피해 한국에 일시 귀국한 것이다. 이랑은 혼자 사는 게 편하다는 산유에게 빌다시피 해 가정부 일을 허락 받고 두 사람이 한집안에 살면서 싸우다 정이 든다.

첫눈에 보기에도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한 집에서 살다가 사랑에 빠진 모 드라마의 줄거리와 흡사하다. 가정부를 눈에 가시처럼 여기며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까칠한 성격의 산유나 실력도 미모도 안되면서 (설정상 그렇지만 산유의 눈에는 매우 예쁘게 보인다) 깡만 좋은 이랑의 캐릭터 역시 문제의 드라마의 주인공 커플이 쉽게 연상된다.

심지어 모드라마에서 남자주인공이 여주인공을 부르는 별명 “닭”처럼 산유는 이랑은 이름 대신 “밭고랑”이라 부르고 시종일관 남자주인공은 반말을 하고 여자주인공은 존대말을 쓴다. 산유와 이랑이 벌거벗은 체로 마주친 거나 산유가 이랑의 늦은 귀가에 신경을 쓰고 이랑은 산유가 낯 모를 여자(라고 오해한 이복동생)와 단둘이 있는 것에 질투를 느낀다는 식의 뻔한 로맨틱 코미디 클라세나 산유가 아버지와의 불화로 도미했고 계모를 미워하며 이복여동생 은유가 있다는 닳고 닳은 한국 트렌디 드라마 단골 설정에서 작가의 창작력 부재가 느껴진다.

창작적 부재도 문제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큰 블랙홀은 엉성한 자료 조사와 억지스러운 설정, 앞뒤 말이 다른 자가당착 식 전개로 일괄하는 작가의 태도다. 우선 주인공 이산유는 할리우드의 1급 작가다. 일급 극작가라면 당연히 그 나라말과 정서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할 텐데 한국계 미국인도 그렇다고 아주 어린 나이에 도미한 것도 아닌 다 자라 성인이 돼 미국에 간 남자가 별 노력도 없이 쉽게 성공한다.

산유는 지극히 미국적인 정서의 글을 쓰는 작가로 설정돼 있는데 이런 상황은 19살의 미국인이 한국에 와서 한국인의 독특한 정서가 담긴 글을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으로 써낸다는 말이다. 어떻게 하면 단편 공모전에서 떨어진 글이 우연히 영화사의 눈에 띌 있는지 이산유의 삶 자체가 영화 감이란 말이 나올만하다.

이산유의 행적에 대한 묘사는 한국인은 우리 편 대 미국인은 나쁜 놈으로 나눠진 타이틀 매치 개념이다. 산유는 혹독한 인종차별적인 발언과 질투로 인한 음해세력의 음모에 의해 섹스 스캔들에 걸려들었고 그 때문에 한국에 일시 귀국한 것이라는 설정부터 그가 높은 인기로 같은 계열에 종사하는 미국인들을 긴장케 했다는 대목은 국수주의적 분위기마저 풍긴다. 문화는 상대적 개념이다. 우리나라 영화(인)이 할리우드에서 성공하면 국위 선양이고 할리우드 영화가 국내에서 성공하면 사대주의인가?

이산유가 에이든 알렉스라는 가명으로 활동해야 했던 이유 대해서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지 않는 일종의 신비주의 전략이라고 해야겠죠. (중략)에이든 알렉스는 지극히 미국적인 정서의 글을 쓰는 작가로 유명합니다. 사람들은 당연히 에이든 알렉스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종 미국인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만약 처음부터 동양에서 온 이방인, 한국인 이산유가 집필자라고 밝혔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영화를 보는 관객 입장에서는 몰입하는데 데에 방해 요소가 되었을 것입니다. 작품에 대한 평가에도 색안경을 낀 편견이 개입되었겠지요(P411)”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예술영화도 아닌 대중 영화 관람 시 작가가 대해 관심을 갖는 관객이 몇 명이나 있을까? 더욱이 신비주의 전략으로 외모가 알려지지 않았다는 말은 앞선 “잡지 인터뷰로 외모가 알려진 후 갑자기 드높아진 명성 또한 행운이었다고 그는 생각했다(P39)”라는 문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영화산업에 대한 무지는 또 다른 곳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데 산유의 여동생 은유는 26살로 할아버지의 재력만 믿고 영화산업에 손을 덴 것으로 돼 있다. 그녀의 제작비 출자하는 방식은 할아버지의 재력, 자신이 모아놓은 통장, 이도 저도 안되면 엄마에게 손을 벌리는 것이다. 시쳇말로 명품 백을 쇼핑하는 것도 아닌 영화제작자로 나선 여자가 가족들에게 손을 빌리는 것 외에는 투자를 얻어낼 도리가 없단 말인가? 그녀가 오빠에게 시나리오는 내놓으라며 생떼를 쓰는 장면에서는 말문이 막힌다. “다른 작가들 찾아 다니면서 원고 구걸하는 것도 모자라 오빠한테까지 그래야겠어? 하긴 내 팔자가 그렇지 뭐. 어휴! 내 신세야.” 은유의 캐릭터는 딱 중학생한테나 어울릴법하다.

이 엉성하기 짝이 없는 드라마는 가족주의로 갈등이 일시에 해결되는데 – 이 점 역시 모드라마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가 좋지 않고 여주인공이 중재에 나선다는 점이 대단히 유사하다. –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수준이하다. 유력 대통령 후보인 산유의 아버지는 상대 후보가 미국 영주권자이며 군면제자인 산유의 존재를 언론에 폭로하겠다고 협박하자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후보 직에서 사퇴한다. 이 과정에서 섹스 스캔들의 배후에 상대 후보가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상대 후보가 할리우드 유명 여배우까지 동원해 일을 꾸몄다는 것도 설득력이 없고 앞서 할리우드의 동양인을 인종 차별 하는 음해 세력에 대해 무수한 험담을 늘어놓고 이제 와서 한국의 유력 정치인이 꾸민 음모라는 식은 작가로써 너무나도 무책임한 행위다.

작가의 땜질식 글쓰기는 이랑이 산유와 결혼을 하면서 원하던 독일 대신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 결말에도 적용된다. 한국에서 재수까지 하며 삼류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여성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명문대에 단번에 입학할 수 있는 것도 의아하지만 이랑은 이런 방향선회에 대해 작가는 “어차피 하노버 대학이 목표가 아니라 음악 공부, 유학 그 자체에 의의를 둔 그녀였기에 개의치 않기로 했다”는 이유를 덴다. 유학 그 자체에 의의를 둔다는 게 대체 무슨 의미인가? 미국과 유럽처럼 학풍이 천지 차이라도 일단 해외에서 공부만하면 어디라도 상관 없단 말인가? 음악공부 자체에 의의를 뒀다면 구지 유학가지 않아도 국내에서 가능한 것이 아닌가?

소설가는 남을 그럴듯하게 속여넘기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에 능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부족한 재능만큼 사전준비를 철저히 해 믿게 만들어야 한다. 적당히 해서는 절대 속아주지 않는다. 극 중 산유는 처음에는 18살에 도미해 34살인 16년 만에 한국에 귀국한 것으로 나오지만 중간에 19살에 대학시험 백지를 제출한 것으로도 묘사되고 마지막에 다시 18살에 미국으로 건너간 것으로 나온다. 단순히 숫자를 착각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런 별 것 아니고 하찮은 실수가 전체 거짓말을 무너뜨리는 틈새다. 독자들이 틈새를 발견하는 순간 허구와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며 독자들은 현실로 나오게 돼 있다. 독자들이 현실을 발견하는 순간 소설은 존재 가치가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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