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혈낭자 하드고어로맨스’ 궁에는 개꽃이 산다

‘궁에는 개꽃이 산다’ 윤태루

궁에는 개꽃이 산다
Title: 궁에는 개꽃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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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2007

은나라(고대 중국의 은나라와는 상관이 없는 가상의 고대 국가)의 태사 개성성의 딸 개리는 8살 때 궁에 놀러 갔다가 은나라의 황태자인 언과 첫 대면을 한다. 그녀는 정치적인 계산하에 언의 현비로 정해지나 자신에게만 냉담한 언의 태도에 큰 상처를 입는다. 언에게 상처 입은 개리는 궁에서 갖은 행패를 부리고 다녀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개(행실이 형편없는 사람을 비속하게 이르는 말) 꽃이라 칭한다.

대략의 줄거리만 살펴보면 정략 결혼을 한 남녀가 뒤늦게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된다는 흔한 역사 로맨스로 보이나 실상은 한국 로맨스 사상 최초의 본격 하드고어(Hardgore) 로맨스다.개리와 언의 관계에 대한 언급은 어릴 시절의 일어난 해프닝을 보여주는 것으로 짧게 정리가 된 후 본격적인 유혈극으로 들어간다.

개리는 언이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유로 그의 사랑을 받는 여성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하는데 폭행의 주대상은 언의 하룻밤 동침 상대인 궁녀들이다. 개리와 그녀를 따르는 대장 격인 궁기와 4명의 궁녀들은 웬만한 조폭 조직을 능가할 정도로 능수능란한 고문 기술을 선보인다.

작가는 우월적 지위에 있는 여성이 사회적인 약자인 여성에게 가하는 폭행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 시키는 것에 그 어떤 두려움도 없다. 폭행과 고문을 집중적으로 묘사해 로맨스와는 무관한 폭력적 텍스트만이 범람한다. 여주인공의 상처 입은 마음에 호소하면서 고문과 폭력을 행사하는 도착적 쾌락에 빠져들 것을 권한다.

개리는 말 그래도 악녀다. 심리적인 마지노선을 지키는 안티 히로인(heroine)이나 위악적인 캐릭터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녀를 악을 행함으로 쾌감을 얻고 이기심으로 가득 찼으며 인간적 고뇌나 최소한의 도덕적 가치도 갖추지 못한 캐릭터다. 로맨스 소설은 전통적인 민담류(faily tail)에 뿌리를 둔 권선 징악적 소설이다. 지금까지 악녀형 캐릭터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이는 모두 안티 히어인 혹은 위악적인 캐릭터의 범주에 들어갈 뿐 악녀가 아니었다. 악녀를 로맨스 영역에 끌어들여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고 칭찬해야 될 것이 아니라 로맨스 소설의 본질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작가를 맹비난해야 할 부분이다.

개리의 유혈극은 언의 또 다른 후궁인 안원에게 행패를 부렸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폐비가 되어 궁 밖으로 내쳐지면서 자해극으로 이어져 문자 그대로 피와 살이 튄다. 이 유혈참극의 이유인 개리의 언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에 대한 최소한의 심리적 묘사도 제시되지도 않는다.물론 언이 그토록 개리를 미워하게 됐는지에 대한 뚜렷한 이유도 없다.

작가는 앞뒤 상황을 모두 생략한 뒤 한 여자의 광신에 가까울 정도의 집착적인 사랑에 대한 묘사만을 밀어 부친다. 그리고 작가의 이런 방식은 독자들이 개리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게 만들 정도로 흡입력이 있다. 하지만, 이는 독자들의 마음에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질시와 비뚤어진 사랑에 동조하는 결과만을 초래할 뿐이다.

언은 개리가 더 이상 눈에 띄지 않자 그녀에게 집착하지 시작한다. 절대 떨어질 수 없는 제 한 몸 같은 연인의 사랑을 그리고자 하는 의도는 이해하나 작가의 숙성되지 못한 사고는 타인에 대한 집착을 로맨스로 편리하게 오독하는 것에 그친다. 개리의 이상 심리에 대한 근거로 부모의 숨겨진 불화와 요절한 어머니의 사연이 제시되면서 유혈낭자극은 신파 일변도가 된다.

개리의 주요 학대 대상이었던 이복자매 위민과 궁녀들이 도리어 가해자인 개리를 옹호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된다. 안원 공주 역시 자신이 언과 개리의 사랑의 방해자였다 용서를 구한다. 개리의 아버지인 개성성도 딸에게 사죄를 구한다.개리는 자신의 악행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지 않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인 모습이다. 신파의 절정인 “죽은 줄 알았던 연인이 살아 돌아오기” 신공까지 발휘되면 지금까지 별다른 이유 없이 서로에 대한 집착적 사랑만을 보이던 개리의 언의 사랑은 처음 시작처럼 너무나도 쉽게 화합해 허무감을 자아낸다.

중반까지 힘겹게 집착적 사랑을 그려가던 작가는 위민과 그를 짝사랑하는 수귀의 에피소드와 언에게 황제 자리를 물려주고 자취를 감춰버린 선대왕 진명제와 군사 예온의 등장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듯 보이나 전자는 병약한 수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흐지부지 되고 후자는 발상은 뛰어나다 급조된 것처럼 엉성하다.

처음부터 한 남자의 곁에 있는 것이 유일한 소원인 여인과 그런 여인을 사랑하면서도 곁에 둘 수 없는 사내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가 황제 대신 자유인으로 살고 싶어했던 사내의 숨겨진 속내와 맞물렸더라면 억지에 가까운 집착적 사랑에 끼워맞추기식 이야기가 아닌 좀 더 탄탄한 구성을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대다수의 국내 독자들은 로맨스 소설을 교훈 따위는 없는 가벼운 시간 때우기 용 읽을 거리로 치부한다. 뭔가 교훈이 있는 로맨스 소설을 발견하면 “로맨스 소설이 아닌 것 같다” 내지 “로맨스 소설로 묻히기에 아깝다”라고 쉽게 말하는데 잘 쓴 로맨스 소설은 단순히 자극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가슴을 공명 시키는 감정적 교훈이 있기 마련이다. 과연 독자들은 이 소설에서 무슨 감정적 교훈을 얻었을까? 집착적 사랑의 정당성? 무의미한 1L의 눈물? 그 답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아마도 작가 자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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