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역사 로맨스의 배경 - 2. 무도회

by 삼월토끼 posted Oct 0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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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처럼 찬란한 샹드리아 불빛, 최신 유행의 드레스를 입은 레이디와 신사들, 정복을 차려 입은 하인들, 황홀한 실내 장식과 감미로운 오케스트라의 연주, 우아한 왈츠같은 것은 우리가 쉽게 연상 할 수 있는 무도회의 한 장면이다.

만약 무도회가 없었다면 신데렐라의 이야기가 세상 여인들의 마음을 그토록 잡아끌수도 없었고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1964)》가 오드리 햅번 영화중 가장 아름답다는 찬사도 듣지 못했을 것이고 남녀가 춤을 추다 사랑을 느끼는 동화같은 로맨스도 당연히 없었을테니 상당수의 로맨스 소설 작가들은 빈 지면을 채우느라 탈모 증세에 시달렸을지도 모른다.

상당한 비약이 깔리기는 했지만, 사교춤과 무도회에 마력같이 여심을 잡아끄는 힘이 내재해 있다는 것에는 대다수가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화려한 무도회는 어떻게 준비했으며 참가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 과정이 필요했을까? 영국 19세기의 무도회장으로 들어가보자.


준비

우아하고 물흐르듯 움직이는 춤을 보여 줄 수 있는 무도회는 레이디들이 찬미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호기였다. 당연히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는 레이디들은 멋진 춤 실력과 우아하게 부채를 흔드는 능력, 값비싼 드레스로 무장하고 전쟁터에 나섰다.

특히 빅토리아 시대 에 이르도록 여성의 패션에는 긴 트레인(여성들의 정장 드레스 뒤에 꼬리처럼 길게 끌리는 부분)이 필수 였는데 이 트레인을 발에 걸리지 않고 춤을 우아하게 춤을 추는 것이 관건이었다.

- 레이디는 허락을 받지 않은 홀에 들어가거나 가로질러 가면 안 된다.
- 레이디는 첫 번째 춤은 반드시 자신의 에스코트와 춰야 한다.
- 레이디는 소개 받지 않은 신사의 춤을 거절해야 마땅하다.
- 수행원 없이 무도회에 참가한 레이디가 있다면 여주인은 반드시 그녀에게 에스코트를 할 신사를 찾아줘야 한다.
- 레이디는 에스코트 없이 대중 무도회장에 입장 할 수 없다.
-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레이디는 수행원 없이 무도회장을 떠나면 안된다.


신사들이 준비해야 할 것도 만만치 않았다. 레이디들이 신청을 기다리는 동안 할 일 없이 배회하는 것은 대단한 무례로 무도회장에 입장한 신사라면 받드시 춤을 춰야 했는데 춤을 출 경우 신사는 레이디의 우아한 옷자락을 밣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동시에 플로어에서 다른 커플과 충돌하지 않도록 레이디를 이끌어야 하는 책임이 있었다.

왈츠의 경우 우선 신사는 여성의 허리를 잡을 경우 너무 꽉 잡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했고 서로의 양 어깨가 동일한 거리를 유지한 상태에서 춤을 춰야 했는데 이 바람직한 거리라는 것이 매우 까다로운 문제였다. 예의를 차리느라 멀리 떨어져 춤을 추면 턴이나 다양한 스텝을 밣는 것이 무리였고 반면 너무 가깝게 추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쉬웠다.

- 신사들은 절대로 레이디들의 드레싱 룸에 절대로 들어가면 안된다.
- 신사들은 방안에 들어가기 전에 의관을 정제하고 장갑을 끼어야 했다.
- 신사는 무도회장에 들어가면서 어색이나 불편함을 드러내면 안된다.
   품위있는 자신감이야말로 신사의 덕목이다.
- 레이디에게 속삭이지 말아라.춤을 기다리는 동안 의자나 소파에 편안히 앉자 있지 마라.
- 상대 여성과 약혼을 했다 할지라도 같은 여성과 너무 자주 춤을 추면 안된 다.
- 신사들은 모든 레이디들이 춤을 출 수 있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
 - 신사가 레이디에게 춤을 거절당했다 하더라도 겉으로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면 안되며 거절 당한 상대에게 재차 춤을 청하면 안된다.
- 신사는 춤이 끝나면 레이디에게 다과를 권해야 하며 상대방이 거절하면 레이디의 자리까지 그녀를 배웅한 뒤 절을 하고 물러나야 한다.
- 협소한 공간에서 열린 무도회라서 만찬 시간에 모두가 앉을 수 없다면 레이디들은 앉고 신사는 뒤에 서서 식사를 한다.
- 신사는 레이디와 안면이 있을 경우나 특별히 여주인의 청이 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집까지 배웅해주면 안된다.


상류 사회 무도회

무도회는 크게 기금을 모아 여는 대중 무도회와 개인 무도회 두가지 종류가 있었다. 개인 무도회의 경우 무도회 주최자의 저택에서 주로 열렸는데 초대되는 사람은 비슷한 부와 지위를 가진 사람에 한정됐다.

대중 무도회장은 귀족과 시민이 만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행사였기 때문에 큰 인기가 있었지만, 상류층은 대중 무도회에 참가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예외적으로 자선 무도회, 사냥 무도회, 경주 무도회, 컨트리 볼 같은 경우에는 같은 대중 무도회라도 더 인기가 있었다. 대중 무도회가 아닌 개인 무도회에 참가하는 사람이라면 지위를 막론하고 파티를 개최한 여주인에게 경의를 표시하는 것이 맨먼저 할 일이었다.

영국에서 큰 인기가 있었던 대중 무도회장은 1765년 2월 13일에 문을 연 올맥의 무도회장으로 가로 40피트, 세로 100피트의 크기의 대형 룸은 개업 날 당시에는 독감으로 런던의 반수가 앓아 누었기 때문에 텅 비었지만, 곧 상류 사회의 상징적인 모임 장소로 자리 잡았다.

올맥의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10기니의 입장료를 내야 했는데 시즌 동안에는 주말마다 무도회와 야식이 포함된 가격이었다.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올맥의 레이디 페트로네스(Lady Patroness)라고 불렸던 후원자 그룹의 검증을 거쳐야 했다.

레이디 페트로네스의 초기 회원은 레이디 펨브로크(Lady Pembroke), 레이디 몰리넥스(Lady Molyneaux), 피츠로이 부인(Mrs. Fitzroy), 메넬 부인(Mrs. Meynell), 펠함양(Misses Pelham), 를로이드양(Misses Lloyd)이었고 1814년에는 레이디 저지(Lady Jersey : 사라 백작 부인[1786~1867]), 레이디 캐슬러리(Lady Castlereigh), 레이디 코우퍼(Lady Cowper : 후에 레이디 에밀리 팔머스톤이 됐음), 레이디 세프톤(Lady Sefton)으로 위원회가 구성됐으며 에스터하지(Princess Esterhazy) 공작 부인, 레븐 백작 부인(Countess of Lieven), 드럼몬드 버렐 부인(Mrs. Drummond-Burrell : 후에 레이디 윌러비 드 에레스비[Lady Willoughby de Eresby]가 됨) 도 이 위원회에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레이디 페트로네스는 이 위원회 회원들이 순번제로 돌아가며 맡았다.

레이디 페트로네스가 했던 까다로운 심사에는 귀족이라 해도 예외가 없었다. 웰링턴 공작조차 무릎 바지(Knee breeches) 대신 트라우져(trousers)를 착용했다는 이유로 입회가 거절당했으며 그외에도 수많은 귀족들이 위원회의 파벌과 변덕스러운 규칙 때문에 배척 받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류층은 올맥에 입회하고 싶어했는데 올맥이 섭정 시대 사교의 중심 무대였기 때문이었다.

올맥의 방 한쪽에는 미지근한 레모네이드, 싱거운 차, 맛 없는 아몬드 시럽, 뻑뻑한 케잌, 얇게 잘라진 빵과 버터등이 차려져 있는 다과 테이블이 놓여 있어 이곳에서 춤을 즐기던 많은 이들이 막간 휴식을 취했다.

올맥의 회원들은 방문객을 데려오는 것이 허용됐는데 방문객은 모든 사람들의 검증을 받기 위해 방 안으로 한명씩 호명되어 불려가 방문객증(Strangers Ticket)를 받거나 검열을 통과하지 못해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무도회와 게임, 야식(밤 11시 제공) 이 제공되는 날은 한 번 문이 닫히면 누구든 지위와 평판과 상관없이 안으로 들어 올 수 없었다. 만약 데뷔탄트가 레이디 패트로네스의 까다로운 눈에 들 수만 있다면 사회적 위치는 급등했으며 올맥의 무도회에서 레이디들이 선택해 준 파트너 - 검증된 신랑감 - 와 짝을 이뤄 춤을 즐길 수 있었다.

party.jpg

개최

무도회를 개최하려는 레이디라면 반드시 2주일에서 10일전에 개최를 알리는 초대장을 보내는 것이 관례였다. 또한 초대장을 받은 레이디들은 그 즉시 참석 여부를 상대편에게 알리는 것이 예의였다.

무도회를 개최하기 위해서는 짧게는 몇주 내지 길게는 몇 달이 소비되기도 했는데 참석할 레이디와 신사들이 새 옷을 맞추게 하기 위한 기간, 만찬 메뉴, 댄스 카드, 초대장, 음악 선별, 연주자 고용, 집안 장식, 무도회장 바닥 다듬기, 19세기 말에는 작은 답례품까지 준비해야했다.

무도회를 열기에 적합한 장소는 사각형에 환기가 잘되고 밝은 곳으로 가장 선호되는 곳은 폭이 넓은 곳보다 약간 긴 곳이었다. 장소를 정했다면 두 번째로는 무도회장의 상,하를 정하는 것이 중요했는데 상에 해당하는 곳이 회장 입구로부터 가장 멀고 오케스트라에 가장 가까운 부분으로 댄스를 이끄는 커플들이 이곳에서 춤을 추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무도회 참가자들은 이것에 대단히 민감했다.

무도회장의 댄스 플로어 상태는 무도회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표면은 부드럽고 울퉁불퉁하지 않게 다듬어야 했는데 1860년대 무도회 메뉴얼에 따르면 우선 뜨거운 물을 부어 바닥을 북북 문질러 닦고 물이 다 마르기 전에 우유를 들이 붓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조각 나무 세공 마루는 춤을 추기에도 편하고 무도회장을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재질이 무엇이든 간에 마루에 윤을 내기 위한 최고의 비법은 하인을 고용해 한 발에는 브러쉬를 달고 다른 한 쪽에는 슬리퍼를 신게 해 바닥위에서 4~5시간동안 춤을 추게 하는 것이 미끄럼을 방지하고 얼굴이 바닥에 비칠 정도로 윤을 내는 것이었다.

무도회장이 준비됐으면 이번에는 초대할 수 있는 손님의 수가 고려 해야 했다. 여주인의 마음이야 누구보다 화려하고 사람들도 북적거리는 성대한 무도회를 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수용 인원보다 더 많은 손님을 초대할 경우 적당한 환기 같은 것은 기대할 수 가 없었다.

대개 초대에 거절 할 인원까지 고려해 수용 인원의 1/4를 초과해 초대장을 발송하는 것이 적정한 것으로 취급됐다. 런던 시즌동안 여주인들은 무거운 커텐 대신 레이스로 창문을 장식하거나 아예 창문을 뗴냈는데 이는 방안의 환기와 온도 조절을 하는데 도움이 됐다.(물론 겨울에는 이마져도 불가능했다.) 무도회 참가자들은 환기가 잘 안되는 것에 대해 큰 비난을 하지 않았는데 런던 무도회장의 반정도가 평균적인 응접실 규모였기 때문에 매일 밤 이런일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무도회장과 초대장 발송이 끝났다면 다음에는 댄스 카드였다. 댄스 카드란 레이디들에게 주어지는 작은 카드로 신사들은 자신이 마음에 드는 레이디와 춤을 추기 위해서는 해당 춤곡이 연주 되기 전에 레이디에게 가서 춤을 청하고 레이디가 그 신사의 청을 받아들이면 해당 춤 순서 옆에 신사의 이름을 적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댄스 카드는 무도회 입구에서 참가자들이 도착할 때 마다 주워졌는데 작고 접히는 형태로 한쪽에는 구멍이 뚫려 있어 작은 펜을 매달수 있게 돼 있었다. 댄스 카드 안에는 음악 프로그램이 두 페이지로 구성돼 있어 한 장에는 저녁 춤 순서가 있고 다른 한 장에는 춤 약속을 적을 수 있도록 돼 있었으며 음악 프로그램의 겉장에는 무도회 개최 장소, 날짜, 오케스트라의 명과 때때로 여주인의 이름이 인쇄돼 있었다.

댄스 카드의 디자인은 여주인인의 취향이 한껏 발휘됐는데 19세기말로 갈수록 소박하고 우아해졌다. 댄스 카드는 무도회의 참가했던 레이디만의 기념품으로 자신의 댄스 카드를 모두 다른 신사의 이름으로 채우는 것은 레이디들에게 대단한 자랑거리였다.

무도회장 설정, 초대장 발송, 댄스 카드 준비가 끝났다면 이제는 무도회의 평판을 좌우하는 오케스트라와 음악 설정이 남아 있었다.

연주자가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춤을 출때의 분위기에 따라 적절한 선율, 템포, 타이밍을 적절하게 포착해 연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주자들은 특히 왈츠를 연주할때는 춤을 추는 사람들이 정확한 시간을 인지 할 수 있도록 각 마디의 첫 번째 음표의 강세를 부드럽고 뚜렷하게 연주할 것을 요구 받았다.

연주자들이 무도회에서 참여하는 비중과 달리 매우 천시받았다. 그들의 지위는 고용된 일반 하인보다 못한 위치였으며 고용인들은 그들의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스크린이나 나무,덩굴,꽃등으로 가렸으며 1881년의 사회적 관습(Social Customs)의 저자 <플로렌스 하위 홀>은 "음악의 신 아폴로를 무도회 연주자로 고용하지 못하는 안타까움" 에 대해서 토로했는데 그녀의 말에 따르면 "아폴로였다면 그를 보는데 불편하지도 않을테고 새벽 3~4시까지 지치지도 않고 연주하는 것이 가능" 할 터였기 때문이다.

19세기말부터는 독일식 파티 문화가 영국 상류층에 많이 유입됐는데 파티 답례품 문화도 그 중 하나였다. 대개의 답례품은 비싸지 않은 부채나 조그마한 꽃다발, 작은 종, 모형 깃발 같은 것들이었으며 조금 더 호화로운 품목으로는 머리 글자를 수 놓은 공단 부채나 옷이나 드레스와 짝을 맞춘 부채, 레이스 부채,거북 껍질과 상아,백단으로 만든 부채가 있었다. 허세를 부린다는 평에도 불구하고 답례품의 사치는 극에 달했다.

 
무도회에서 춤이 왜 그토록 인기를 끌게 되었나? 답은 간단하다. 그 시간만이 유일하게 샤프롱 없이 레이디와 신사들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특히 전과 달리 손과 몸을 밀착한 채 추는 왈츠는「폐결핵과 죽음의 동맹자」「도덕성과 건강을 해치는 사회악」「눈을 뜨고는 볼 수 없는 천박한 춤」등등의 사회적 비난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재빠르게 젊음이들의 춤으로 자리잡았다.

왈츠가 가장 인기있는 춤이었지만 그렇다고해서 사람들이 무도회에서 한 종류의 춤만 춘 것은 아니었다. 1810년의 뮌헨에서는 9종류의 왈츠를 췄으며 황제 시대에는 미뉴에트, 가보트, 모나코, 트레니츠등이 무도회에서는 각광을 받았으며 빅토리안 시대에는 한 무도회에서 12~14종류의 춤, 만찬, 10~12 종류의 춤을 추는 식으로 24종류에 이르는 춤을 췄다. 휴식 시간에는 한쪽에 차려진 다과를 즐겼다.

공식 무도회는 그랜드 마치(Grand march : 무도회 개최 행진)로 시작됐는데 2/4박자로 직선, S자형, 원형을 만들며 무도회장 주위를 전진했다. 첫 번째 춤은 항상 쿼드릴(Quadrille)로 방 안에서 가장 신분이 높은 사람이 여주인이나 여주인의 딸 중 한사람과 추는 것으로 무도회의 시작을 알렸다. 무도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우아한 스텝을 밣고 다양한 쿼드릴 형태를 만들어내면서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쿼드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 절로 레이디들은 춤을 마치며 어떻게 우아하고 세련된 태도로 4박자만에 절을 마칠 수 있을지를 놓고 고민했다.

쿼드릴 다음의 순서는 대개 왈츠를 췄는데 천천히 우아하게 추는 것과 폴카처럼 힘이 넘치는 두 가지 형태가 있었는데 우아한 버전이 더 인기를 끌었다. 막간 휴식을 위한 티 룸은 언제든지 다과를 위해서 개방돼 있었는데 차, 차가운 커피, 펀치, 클라레(프랑스 보르도산 적포도주), 샌드위치, 플레인 케익등이 차려져 있었고 늦은 저녁 시간에는 부이용(맑은 소고기 스프)과 뜨거운 커피가 추가됐다.

별도의 방에 다과를 차릴수 없는 경우에는 무도회장의 한쪽에 사이드 테이블을 놓고 펀치와 케이크를 대접했다. 파티를 주제한 여주인은 다과를 풍부하게 준비해야 했는데 그렇지 않으면 다우저(죽은 남편으로부터 작위,재산등을 물려받은 귀족 미망인)나 댄서들,구경꾼들의 비난을 사기 쉬웠다.

많은 무도회들은 저녁 7~8시에 제공되는 정찬 뒤에 시작됐는데 특히 시즌 중에는 저녁 늦게 가벼운 만찬이 뒤따랐다. 가벼운 만찬이 있을 경우 무도회의 초반부에는 우아한 왈츠로 시간을 보낸 후 자정이 가까우면 만찬장으로 입장했다. 만찬장 역시 신분이 가장 높은 사람과 여주인이 짝을 이뤄 입장했으며 이때의 만찬 파트너는 마지막 춤을 춘 상대가 됐다. 만약 마지막 춤을 춘 사람이 같이 온 사람이 아닐 경우 신사는 레이디에게 적합한 상대방을 미리 물색해 줘야 했다.

 
식탁은 우아한 도자기,크리스탈 컷 글래스, 꽃으로 장식됐으며 대부분의 음식은 랍스터 샐러드, 연어 마요네즈, 뼈를 발라낸 칠면조, 닭가슴살과 생굴같은 약간의 차가운 음식을 제외하면 뜨거운 상태로 대접됐다.뜨거운 음식에는 다양한 가금류와 야채가 주를 이뤘으며 디저트,와인,샴페인도 풍부하게 제공됐다.

무도회 중간에 자리를 뜰 경우 분위기를 해칠 우려가 있으므로 되도록이면 조용하게 퇴장해야 했으며 개최자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것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파티의 흐름을 깰수 있으므로 생략하는 것이 관례였다. 흥겨운 만찬이 끝나면 다시 춤이 이어졌으며 새벽 3~4시까지 이어진 무도회는 마지막 손님들이 주인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돌아가는 것으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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