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젠시 로맨스

by 로맨시안 posted Oct 0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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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섭정 황태자 조지(후에 조지 4세가 됨)가 부왕인 조지3세를 대신하여 영국의 통치권을 맡은 기간인 1811년부터 1820년까지를 말한다. 로맨스 작가들이 특히 이 섭정 시대를 주요 배경으로 사용하게 된 데는 섭정 시대에 주요 작품 활동을 벌였던 제인 오스틴(1775~1817)의 영향이 크다.

1813년 <오만과 편견>을 시작으로 1817년 유작 <센티턴>을 쓸 때까지 섭정 시대를 배경으로 한 제인 오스틴의 유쾌한 애정물들을 읽은 그녀의 광적인 팬들은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을 넘어서 직접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 창작에 뛰어드는데 이것이 리젠시 로맨스물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조제트 헤이어

우리는 리젠시 소설을 읽기에 앞서 제인 오스틴 말고 또 한 명의 여성에서 감사를 표해야만 한다. 그녀는 실질적인 이 장르의 창시자로서 영국의 작자 조제트 헤이어(Georgette Heyer,1902~1974)이다.

조제트 헤이어는 1921년 19살의 나이로 첫 소설《The Black Moth (1921)》을 발표한 이래 1974년 폐암으로 숨을 거두기 전까지 로맨스,역사,미스테리 같은 다양한 장르의 소설 57권을 출간했다.

특히 이중 29권은 리젠시 시대의 상류층을 배경으로 한 애정물로 그녀의 책을 읽은 많은 다른 작가들이 영감을 받아 리젠시 로맨스 소설을 쓰면서 하나의 로맨스 하위 장르가 탄생하게 된다. 제인 오스틴이 주로 섭정 시대의 유쾌한 중류층의 삶을 묘사했다면 조제트 헤이어의 작품은 철저하게 상류층의 삶을 배경으로 한 것이 차별화된 특징이다.

전반적으로 1800~1830년까지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물을 <리젠시 로맨스>로 칭하지만, 18세기말부터 19세기 초까지의 조지안 시대를 무대로 한 로맨스물과의 시기적 유사성으로 인해 분류가 모호한 경우도 종종 있다.

리젠시 소설의 내용은 귀족들이나 그에 버금가는 부유층 자제가 남녀 주인공이며 대부분 다루는 주제는 혼인 적령기에 여주인공이 겪는 연애담으로 화려한 사교 시즌, 우아한 티파티, 음악회, 공원 산책, 사냥 대회 등의 상류층 관습이 중심 소재로 사용된다.

무엇보다 리젠시 로맨스물을 다른 역사 로맨스 소설과 뚜렷하게 구분 짓는 것은 요소는 섭정 시대의 문체, 사회적인 규범, 계층간의 엄격한 신분차,귀족들의 생활양식들을 얼마나 철저하게 재현하는데 있다.

특히 섭정 시대의 용어는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독자들조차 그 뜻이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낯설고 소설속 애정 묘사도 드물어 최근에는 <전통적인 리젠시 로맨스 소설(Traditional Regency)>보다 단순히 배경만을 섭정시대로 설정한 <유사 리젠시 역사 로맨스(Regency Historicals)>가 더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는 독자들이 전통 리젠시물을 고루하다고 생각하고 유사 리젠시 역사 로맨스물의 화끈한 성적 묘사와 유머, 관습에 벗어난 캐릭터들에 더 큰 매력을 느끼고 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많은 전통 리젠스물 작가들조차 자신의 장르를 버리고 유사 리젠스물로 장르를 바꾸고 있어 장르가 이대로 고사해 버리는 것이 아닌지 걱정하는 전통 리젠스물의 팬들의 우려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국내에서 번역되고 있는 섭정 시대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물은 대부분 <전통 리젠시물>이 아닌 <유사 리젠스 역사 로맨스물>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 로맨스 작가 주디스 맥노트,줄리아 퀸,리사 클레이파스, 로레타 체이스,스테파니 로렌스등은 전통 리젠시 로맨스 작가가 아닌 역사 로맨스 작가로 분류된다. 아직까지 전통을 고수한 리젠시 작가의 작품으로 국내에 소개된 작품은 칼라 켈리의 작품정도이며, 그밖에 메리 조 푸트니나 메리 블로그의 전통 리젠시물은 소개 되지 않고 있다.

 

섭정 시대

리젠시 소설 속 묘사와 달리 섭정 시대는 귀족을 제외한 일부 특권 계층을 제외하고는 그리 좋은 시절이 아니었다. 새로운 종교의 등장, 나폴레옹의 대륙 봉쇄령,미국과의 전쟁, 물가 하락, 흉작으로 인한 소작인들의 도시 유입, 도시 인구 증가에 각종 사회 혼란까지 더해져 영국의 암흑기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뿐만 아니라 당시 국왕 조지3세가 정신병으로 인하여 더 이상 국정을 맡아볼 수 없게 되면서 그의 맏아들 황태자 조지(후에 조지 4세가 됨)가 섭정 황태자에 오르자 상황은 한층 악화일로로 치닫는다.

섭정 황태자

섭정 황태자 조지는 특별히 성품이 나쁘거나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약간 게으르고 이기적인 한량이었을 뿐이다.

그는 문화, 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아 제인 오스틴의 <엠마>를 자신에게 헌정케 했고, 바이런(Byron, 6th Baron : 영국의 시인) 과 스코트(Walter Scott : 영국의 시인, 소설가) 을 후원 했으며 화가 로렌스(Thomas Lawrence)의 모델이 되어 주고 베토벤에게 200파운드를 하사 하는 등의 각종 문화장려정책을 베풀었다.

또한 섭정로, 섭정 공원을 설계하고 건설하는데도 관여했으며 버킹검 궁전의 개축, 윈저성의 수축도 모두 섭정 황태자의 주도하에 이뤄진 결과물이다. 어떤 역사가의 말처럼 영국 최초의 신사이자 유럽 최고의 멋쟁이라는 별명이 딱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캐롤라인 왕비하 지만, 섭정 황태자는 국민보다는 자신을 위하는 왕이었기에 방탕하고 절제하는 법을 몰랐다. 18세에는 여배우인 로빈슨 부인(Mrs.Perdita Robinson)과 연인 사이가 되었고 20살 때는 국법에서는 금하는 가톨릭교도인 피처버트 부인(Maria Anne Fitzherbert)과 내연 관계를 맺는다.

1785년 황태자는 자신의 막대한 빚을 청산하기 위해 캐롤라인(Caroline of Brunswick) 공주와 결혼을 하게 되는데 결혼한 지 1년 만에 왕비와 별거하고 다시 피처버트 부인과의 내연 관계로 돌아가 도덕적인 영국 국민을 크게 실망시켰다.

피처버트 부인이 런 방탕한 왕에 지친 귀족과 평민 모두 혁명을 원하게 되어 영국은 내란 직전 상황까지 몰렸지만 섭정 황태자의 운이 끝나지 않았던지 때마침 경제가 재부흥되고, 남편에게 버림 받았던 캐롤라인이 섭정 황태자의 대관식 때 왕비로 나서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왕실 스캔들이 국민들에게 새로운 오락 거리로 등장하게 된다.

영국 국민은 선거법 개정도 잊은 채 왕과 왕비의 진흙탕 싸움의 심판관을 자처하며 캐롤라인 왕비에게 지지를 보냈지만 캐롤라인 왕비가1821년에 사망함으로써 이 스캔들도 일단락되고 섭정 황태자는 무사히 조지 4세에 등극하게 된다. 이 게으른 한량 황태자를 주인공으로 삼은 로맨스 소설로는 갤런 폴리의 《Prince Charming,2000 : 프린스 차밍(큰나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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