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상류층 1. 밀러 시스터즈

by 삼월토끼 posted Oct 03, 200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모든 것에는 원조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비단 족발집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다. 록스타를 남편으로 두는 모델의 계보는 파멜라 앤더슨 이전에 제리 홀에게서 시작됐고 2000년대 재벌 가의 상속녀 힐튼 자매가 신문 지면을 장악하기 앞서 90년대에는 밀러 자매들이 포진해 있었다.

밀러 자매는 ‘면세점의 왕’이라 불리는 미국의 억만장자 로버트 밀러의 세 딸 – 피아 크리스티나, 마리 상탈, 알렉산드라를 지칭하는 말로 일개 벼락부자의 파티걸에 불과했던 이들 자매는 결혼으로 상류 사회의 전설이 됐다. 밀러 자매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녀들의 아버지인 면세왕 로버트 밀러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로버트 밀러는 메사추세츠의 평범한 세일즈맨의 아들로 태어나 면세점(Duty-Free Shops)의 공동창업자이자 국제 투자 그룹 인 서치그룹의 설립자가 된 사업가이다. 그는 에콰도르 출신 미녀 마리아 클라라 상탈 페산테스(Maria Clara "Chantal" Pesantes)와 결혼해 밀러 자매를 낳았고 이들 트리오는 유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뉴욕에 돌아와 십대시절부터 멋진 외모, 뛰어난 패션 감각, 플래티넘 카드로 상류 사회의 눈에 든다.

1992년 장녀 크리스티나가 결혼했을 때만해도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1995년 차녀와 막내가 차례로 유럽의 귀족들과 결혼을 하자 뉴욕 상류 사회를 넘어 유럽과 미국의 일반인들까지 관심을 내보인다.

‘베니티 페어’,’보그’, 라이프&스타일’등에 세 자매의 화려한 일대기가 실리며 한층 인지도를 높인 그녀들은 이후 일상 생활이 파파라치 카메라에 포착되고 잡지와 신문에 낫 낮이 중계되면서 각종 매체의 ‘잇 걸스’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세 자매가 모두 긴 금발 머리에 비슷한 체격이라 세 쌍둥이 같아 보이긴 하지만 피아는 수줍음이 많고 마리 상탈은 제왕적이며 막내 크리스티나는 쿨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시즌 행사처럼 세 자매와 어머니와 함께 전세계의 쇼핑가를 휩쓸고 다니는데 취향도 제각각 이어서 피아는 클래식한 입센로랑, 마리 상탈은 공주 풍의 라 렌타(la Renta)나 발렌티노, 크리스티나는 파격적인 디자인의 맥퀸을 좋아한다고.




크리스티나 밀러

과연 그렇다면 밀러 자매들의 결혼 상대자가 누구일까? 결혼의 첫 포문을 연 사람은 1966년생인 장녀 피아 크리스티나다.

그녀는 아버지의 첫 번째 면세점 개점 지였던 홍콩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전세계에서 수업료가 가장 비싸기로 유명한 사립학교 라 로제(Le Rosey)를 다녔고 명문 조지타운 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재원으로 1992년 발리에서 미국의 10대 부호 집안으로 꼽히는 게티 오일의 상속자 크리스터 R. 게티와 비공개 태국식 결혼식을 올렸다.

이들 커플은 4명의 아이들(이사벨라(1993), 로버트 맥시밀리언(1996), 콘나드(1998), 막시무스(2003))을 낳고 2005년 이혼했다. 현재 피아 크리스티나는 유명 화장품 업체 세포라의 대변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마리 상틸 밀러

차녀가 바로 그 유명한 현 그리스 왕세자비이자 덴마크 공주인 마리 상탈이다. 그리스는 1967년 일어난 쿠데타로 왕이 쫓겨난 뒤 1974년 국민투표를 통해서 왕정이 폐지되고(콘스탄티노스 2세가 직접 왕정폐지를 선언했다.)

그리스 공화국(Hellenic Republic)이 됐으므로 그리스 왕이란 칭호는 아무런 권력이 없는 언론과 유럽의 왕실에서만 통용되는 예의상 호칭일 뿐이다. 법적으로는 사용할 수 없다.

현존하는 그리스 왕가는 그리스 혈통과는 무관한 북부 독일 올덴버그 왕가에서 갈라져 나온 덴마크 왕족인 굴룩스버그 가문으로 채 200년도 못 되는 짧은 통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스 국민 입장에서는 그리스 왕가는 유구한 역사에 무임승차한 이방인인 뿐이다.

콘스탄티노스왕 생전 시 왕정복고가 이뤄지지 않으면 파블로스 왕세자는 왕이 되지 못하고 왕위요구자에 머물러야 한다. 왕과 왕비가 되지 못하더라도 이들 부부는 덴마크의 왕자와 공주라는 타이틀을 평생 유지할 수 있다.

현 명목상의 국왕 콘스탄티노스 2세(King Constantine)의 손위 누이인 소피아는 스페인의 왕비이며 그리스 왕비 안네-마리(Queen Anne-Marie)는 덴마크 여왕의 동생이다. 그리스 왕세자 파블로스는 직간접 혈연 관계 덕택에 영국 왕위 서열 227번째이자 덴마크의 왕자이다.

마리 상틸은 결혼을 통해서 전 유럽 왕실과 친척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유럽 사교계의 최상층부로 직행할 수 있는 티켓을 거머쥔 것이다. 두 사람이 결혼 한 직후 언론에서는 재정이 빈약한 그리스 왕가가 든든한 돈줄을 잡기 위해서 마리 상탈를 선택했고 졸부인 밀러 집안 역시 족보를 세탁하기 위해서 이 결혼을 허락했다고 한 동안 말이 많았다.

마리 상틸의 성장 과정은 자매들과 비슷하다. 1968년 런던에서 태어난 10살 때까지 홍콩에서 성장 한 후 언니와 라 로제를 다녔고 미국으로 이주한 뒤 뉴욕에 위치한 명문 사립학교인 마스터스 스쿨을 졸업했다.

뉴욕 아카데미 오브 아츠에서 1년, 뉴욕대학에서 미술사를 2년 공부하기도 했다. (졸업은 하지 못했다.) 1993년 친구의 생일 파티에서 그리스의 왕세자인 파블로스를 만나 데이트를 시작했으며 2년 뒤인 스위스의 한 케이블카안에서 청혼을 받고 1995년 7월 1일에 영국의 소피아 대성당에서 그리스정교회식으로 화려한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식장과 피로연장을 장식하기 위해서 수 천 송이의 장미가 사용됐으며 전설적인 디자이너 발렌티노가 신부를 위해서 15만 달러(1억 5천만 원)짜리 웨딩 드레스를 직접 디자인했다. 유럽의 왕족 및 귀족이 총출동한 이 날 결혼식은 초대 객이 1,400명 이상으로 모두 성당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직계 일가를 제외한 사람들은 피로연장에서 위성으로 생중계된 결혼식을 지켜봤을 정도로 대성황을 이뤘다.

이 날 결혼식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필립공이 결혼한 1948년 이래 왕족들이 가장 큰 회합 장이었으며 총 결혼식 비용으로 550만 달러(55억)가 소요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결혼 후 뉴욕에서 신접 살림을 차리고 1996년 장녀 마리아 올림피아 그리스 덴마크 공주, 1998년 콘스탄티노스-알레시오스 그리스 덴마크 왕자, 2000년 아킬레스 안드레아스 그리스 덴마크 왕자를 낳았으며 2003년에는 그리스 망명 왕가가 있는 영국 런던으로 이주 해 이듬해인 2004년에 오디세우스 키몬 왕자를 얻는다. 2008년 아리스티드 스타브로스 왕자가 태어난다.

장녀인 마리아 올림피아 공주와 콘스탄티노스 알레시오스 왕자의 대부는 각각 찰스 왕세자와 윌리엄 왕자이기도 하다.마리 상탈은 2000년 고급 아동복 업체인 ‘마리 상탈 LLC’를 설립했고 전공을 살려 동화책 “개구리 공주”의 일러스트를 담당하기도 했다. 현재는 뉴욕과 런던의 투자 컨설턴트일을 하고 있는 남편 파블로스와 함께 그리스 왕정 복고에 힘쓰고 있으나 앞서 설명했던 이유로 그리스 국민은 덴마크 왕자 및 속물 근성의 미국인 상속녀를 자신들의 왕과 왕비로 받아들이는데 별 관심이 없다.

알렉산드라 밀러

알렉산드라 나타샤 밀러는 1972년생으로 세계 쇼핑의 중심지인 홍콩, 파리, 뉴욕등지에서 성장했으며 파슨스와 브라운대학에서 패션과 미술사를 공부했다.

언니 마리 상탈이 결혼한 세 달 뒤 1995년 10월 28일 뉴욕의 성 이냐시오 로욜라 교회에서 2살 연상의 벤처 투자가 알렉상드르 에곤 본 퍼스텐버그와 결혼식을 올렸다.

에곤은 언니 마리 상탈의 친구였으며 두 사람은 밀러 가족들이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갇혀 있을 때 첫 만남이 이뤄졌다. 이후 에곤이 코네티컷에 있는 어머니의 별장에서 청혼하면서 결혼이 성사됐다. 장장 3일 동안 치러진 결혼식에는 신랑의 친척 할아버지인 피아트의 설립자 지오반니 아넬리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알렉산드라 밀러남 편인 알렉상드르는 유명 패션 디자이너 커플인 다이안 본 퍼스텐버그(결혼 전 이름은 다이안 할핀이다. 유대인 상류 가문 출신으로 1969년 에곤 본 퍼스텐버그와 결혼해 3년만인 1972년 이혼했다. 결혼 당시 다이안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퍼스텐버그 가문에서는 두 사람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았다. 2001년에는 미국의 언론 거물인 베리 딜러와 재혼해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와 독일의 명문귀족 출신의 에곤 본 퍼스텐버그(원래는 퍼스텐버그공(公) 이어야 하나 어머니가 평민이어서 작위를 승계 받지 못했다.) 부부의 외아들이며 할머니는 이탈리아의 유명 자동차 회사 피아트의 설립자 지오반니 아넬리의 손위 누이로 돈과 명예를 모두 가지고 태어난 명문가의 일원이다.

이들 부부는 딸 탈리타 나타샤(1999)와 아들 타씰로(2001)를 얻은 뒤 2002년 별거, 이혼했다. 알렉산드라는 전 시어머니인 다이안 폰 퍼스텐버그의 브랜드인 DvF에서 크리에이트 디렉터로 일했으며 남편과 이혼한 뒤에는 뉴욕의 유명한 바람둥이인 아트 딜러 팀 제프리스와 잠깐 교제하다가 다시 싱글로 돌아갔다. 돈, 명예, 외모를 고루 갖춘 독신남 알렉상드르는 연하의 상속녀 알리 케이와의 열애 사진으로 연일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Copyright ⓒ 로맨스웹진 로맨시안(www.romancian.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