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로맨스 작가들은 할리퀸의 꿈을 꾸는가?

by 삼월토끼 posted Oct 06,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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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한국 로맨스


한국 영화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2006년쯤 한국인이 문화 편중 현상이 심각하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문화생활로 영화를 선택하고 있어 한국 영화계는 대단한 호황을 맞고 있지만, 문학이나 공연 같은 다른 장르는 점점 더 입지가 줄어들고 있고 관객 천만 명 시대의 호황인 영화계도 내실은 일부 블록버스터 상업 영화 두세 편에 해당할 뿐 독립 영화나 할리우드 영화를 제외한 다른 나라 국가들의 소규모 영화는 여전히 변두리 신세로 한국 관객이 좋아하는 장르도 일부 코미디나 조폭 등에 한정되는 등 쏠림이 심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2008년, 언제 한국 영화계의 호황기가 있었느냐는 등 급격한 관객 감소에 따른 한국영화계의 최대 위기가 심심치 않게 거론되고 있다.

이런 쏠림 현상은 비단 영화계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한국 로맨스 시장도 그 쏠림의 정도가 심했다. 지금까지 국내 로맨스 소설 소비층에게 먹히는 장르는 딱 두 장르다. 웃기거나 슬프거나. 코미디에 더 큰 방점이 찍혀 있는 로맨틱 코미디 아니면 감정의 극한을 시험하는 신파성 강한 로맨스 드라마. 현대물에서 남성 주인공의 직업은 재벌 2세나 혹은 펀드 매니저 등으로 최상위 클래스에 속하는 인물군에 한정된다. 아무리 좋게 봐도 할리퀸이나 실루엣 로맨스 같은 카테고리 로맨스이며 할리퀸이나 실루엣에서도 신데렐라 스토리를 소재로 삼는 할리퀸 프레젠트/실루엣 로맨스 계열의 로맨스다. 이것이 역사물로 가면 재벌남을 장군이나 황제가 대신하며 한국적 신파라는 얼토당토않은 용어로 눈물 짜내기에 급급하다. 결과적으로 이 두가지만 가지고도 시장에 먹혔다. 2002~3년 사이 한국 로맨스는 ‘도서대여점’에서 로맨스 소설의 대명사인 할리퀸을 밀어내고 시장의 지배자로 급부상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도서대여점’ 시장은 무협소설, 판타지소설, 로맨스소설 순의 비중이었다. 하지만, 국내 독서 시장의 파이가 작아지면서 온갖 출판사들이 돈 되는 무협과 판타지에 뛰어들었고 급격한 질적 하락이 뒤따랐다. 더불어 무협과 판타지 장르의 타켓 독자층이 남성이라는 특성은 인터넷과 결합해 훗날 유례없는 저작권 전쟁으로 이어지는 불법 업로드 문화를 태동시켰다.

2000년대 중반 들어서부터 한국 독서시장은 재미 보다는 실용을 추구하기 시작했고 많은 남성 독자층이 무협과 판타지 대신 경제 실용서를 집어들었다. 반면, 여성 독자층은 변동이 없었고 도리어 드라마 원작 소설 붐으로 파이가 커졌다. 이렇게 되자 기존의 소규모 로맨스 장르 전문 출판사뿐만 아니라 대형 출판사에서 로맨스 전문 임프린트를 세우고 같은 도서대여점의 소비층을 공유하는 특성을 지닌 만화 출판사가 역시 임프린트 형식으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전까지 무협과 판타지를 주종으로 삼던 출판사들도 시장을 잃자 새로운 매출을 얻고자 로맨스 소설을 내기 시작했다. 그 외에도 개인 규모의 군소 출판사까지 대략 15개의 출판사가 하루가 멀다고 로맨스 소설을 말 그대로 쏟아붓기 시작했다. 로맨스 출판 시장이 가장 팽창했을 2007년에는 한 달에도 50~60여 종이 로맨스 소설이 나왔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한국 로맨스계의 작가군이 이런 팽창한 시장을 받쳐줄 만큼 탄탄한가에 대해 반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로맨스 소설 시장의 종주국인 미국은 로맨스 소설이 2005년도 전체 픽션 시장의 40% 점유, 매출 14억 달러(약 1조 4천억 원)에 달하지만, 연간 신간 종수는 겨우 6,000권, 미국 로맨스 작가 협회에 소속돼 있는 작가는 9,500명(정식 데뷔하지 않은 이북작가도 포함)이다. 어림잡아도 한해 대략 400~600여 종이 출간되는 국내 로맨스 시장은 출간 종수만 보면 미국의 10~15% 수준이지만 시장 규모는 그에 훨씬 못 미칠뿐더러 (대한 출판 협회 2006년도 추정 전체 문학 시장 규모 3,800억) 작가층도 얇다. 손에 꼽을 만한 얇은 작가층으로 책을 출간하려니 일명 '폭탄'으로 불리는 수준 이하의 로맨스가 양산되고 특정 인기 작가를 둘러싼 과열 경쟁 현상까지 일어났다. 더불어 저 엄청난 종수에서 다양한 소재의 소설이었나 하면 그렇지도 못했다.

과도하게 시장이 팽창한 데는 책이 일차적으로 향하는 곳이 독자가 아니라 대여점이기 때문이다. 일정 부수를 대여점에 돌리는 형식으로 수익을 창출하기 때문에 빚어진 참극이다. 이때부터 조판으로 1권 분량을 2권으로 뻥튀기시키거나 굳이 반품 안 되는 하드커버로 만들어 값만 올려 받는다는 등의 출판사의 비뚤어진 관행에 대한 대여점의 불만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시장에 쏟아지는 소설은 많지만, 이 일단의 무늬만 다른 쌍둥이 같은 소설의 홍수와 역시 국내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출판 전 ‘인터넷 연재 시스템’은 불법 업로드를 부추겼고 한때 시장의 블루오션이었던 로맨스 소설 역시 앞서 두 장르와 마찬가지의 길을 걷고 있다. 한때는 입도선매식으로 인터넷에서 연재되는 책마다 계약했던 대형 출판사는 현재 출간을 기다리는 로맨스 원고만 100편에 이른지만, 시장이 축소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그동안 국내 로맨스 시장이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팽창해 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체 시장이 작아지자 이번에는 대여점 측에 문제가 생겼다. 만화, 판타지, 무협에 이어 로맨스까지 수익이 나지 않자 대여점의 폐업이 속출했다. 주변에 대여점이 사라지자 그동안 싼값에 소설을 빌려보던 로맨스 소설 독자층이 얇아졌다. 단순 계산이면 대여점의 독자층이 도서 구매로 이어져야 하지만, 그동안 1,000원에 빌려보던 책을 9,000원에 구입하고 싶어하는 독자층은 없었다. 대체 이유가 뭘까? 과거에도 대여점은 있었고 월에 10여 종의 책이 나오던 시절에는 지금은 꿈만 같은 10쇄, 20쇄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이 해답은 대표 문화 소비 상품이라 할 수 있는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의 생각은 뚜렷하다. 그만한 가치가 없으면 언제든지 불법으로 이용할 수 있다. 할리우드 영화든 한국 영화든 영화관에서 볼 가치가 없으면 쉽게 다운로드를 한다. 그래서 할리우드는 동시개봉이나 영화관에서 그 스케일을 즐길 수 있는 블록버스터를 만든다. 미국 드라마의 유입으로 눈이 높아진 한국 영화 관객들은 더 이상 어설픈 한국식 장르 영화에 만족하지 못한다. 더 잘 만든 할리우드 영화도 몇 달 뒤면 손쉽게 다운받을 수 있는데 뭐하라 돈 낭비하며 한국 영화를 보러 가겠는가? PC 통신 시절과는 확연히 달라진 생활환경의 변화도 무시할 수 없다. 구지 빌려보지 않아도 각종 로맨스 커뮤니티에는 고만고만한 수준의 글이 연재되고 있는데 빌리거나 살 필요가 있는가? 로맨시안에 유입되는 검색어 중에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것은 기사를 검색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A다운, B 다운’ 같은 소설을 내려받을 목적으로 들어오는 경우다.

사실 이것은 앞서 말한 한국 로맨스의 할리퀸화와도 무관하지 않다. 여타의 장르 소설이 그렇듯 로맨스 장르는 대표적인 외국 유입 장르다. 국내 로맨스 작가들이 접한 것은 삼중당 하이틴 로맨스 대표되는 할리퀸 로맨스 계열이나 혹은 주디스 맥노트, 주드 데브루, 조안나 린지 같은 포스트 리전시 역사 로맨스 계열이었다. 이 중 국내 토착화가 쉬웠던 것은 단연 할리퀸이었다. 국내에 유입된 역사가 오래될 뿐만 아니라 할리퀸의 이야기 구조는 딱히 연구하지 않더라도 누구든지 마음먹으면 비슷하게 직조해 낼 수 있는 '할리퀸 엔터프라이즈사'가 만들어낸 히트 상품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2000년대 당시 독자들은 천편일률적인 할리퀸 (사실 이 대목에서 비난의 대상은 할리퀸이 아니라 이를 선별해 국내에 들여오는 해당 출판사의 책임도 묵과할 수 없다. 할리퀸의 수십 가지 카테고리 중에서 우리가 아는 카테고리는 - 바로 그 재벌남 스토리로 대변되는 - 3~4개가 안 된다는 사실은 아는가?) 대신 같은 값이면 좀 더 정서적으로 친숙한 한국 로맨스를 택했다. 바로 국내에서 가장 잘 먹힌 린 그레이엄 표 한국 로맨스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린 그레이엄은 앞서 언급한 할리퀸 프레젠트 계열의 작가로 그녀의 로맨스는 ‘이상 심리 남주인공의 소유욕’ - 이 단 세 글자로 점철돼 있다. 거두절미하고 남주인공은 과거에 사랑했던 여주인공과 우연히 재회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을 버렸다며 그 죗값을 받아내려 한다. 여주인공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압도적인 위치에 있는 남 주인공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결말에 이르면 그동안 연인들이 헤어졌던 이유는 오해였음이 밝혀지고 두 사람은 아이 낳고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 사실, 250페이지 미만에 할리퀸 장르에는 이보다 더 좋은 수 없는 선택과 집중이다. 외국에도 린 그레이엄류의 작가는 - 페니 조던, 미랜다 리, 미셸 레이드,헬렌 비안친,샬로트 램등으로 많다. 그런데 ‘우리라고 못 써낼 이유가 없는가?’라고 반문한다면 이는 영미권과 우리네와 출판 시스템상에 차이점을 들고 싶다. 외국의 경우 시장의 일정한 질이 유지되는 것은 할리퀸이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이지 리딩/라이팅 개념으로 한때 할리퀸을 썼던 작가들은 여기서 공력을 쌓아서 우리가 흔히 장편 소설이라고 부르는 싱글 타이틀로 이동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일단의 카테고리 로맨스를 거치지 않고 싱글 타이틀로 데뷔한 작가는 손에 꼽을 정도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카테고리 로맨스 시장이 없다. 인터넷에서 1차 검증을 거치고 곧바로 출간된다. 인터넷이 외국의 카테고리 로맨스 시장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가? 이는 인터넷 문화를 간과한 것이다. 공짜로 보는 마당에 날카로운 비평을 기대하는가? 또 한국 로맨스 커뮤니티 특유의 ‘언니, 동생’ 하는 문화는 어떤가?

할리퀸은 할리퀸이다. 데뷔 시 작가의 이름조차 할리퀸사에 귀속된다. (우리네 연예기획사 시스템을 생각해보면 쉽다.) 누가 할리퀸을 쓰라고 강요한 것도 아닌데 할리퀸 프레젠트을 고집하고 있다. 혹여 현대물이 아니라 로맨틱 스릴러나 패러노말 같은 장르도 간혹 나오지 않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답변하자면, 한국 로맨스에서 외피는 역사든 패러노말이든 스릴러든 상관없다. 지배 정서는 할리퀸이다. 그 밖에 찾을 수 있는 것이 포스트 리전시 로맨스 소설인데 이 장르가 정서의 이미 20년 전 정서이며 일명 보디스 리퍼(bodice-ripper : 속옷을 찢는 사람) 라고 해서 폐기처분된지 오래다.

딱 할리퀸 수준의 글을 쏟아내려거든 할리퀸 가격을 받아야 한다. 할리퀸 가격이 싫다면 답은 하나다. 제값 하는 책을 써내면 된다. 과거 유명 방송작가인 송지나 씨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동료 작가들에게 돌 맞을 발언이지만, 나는 굳이 두 번 볼 책이 아니면 대여점에서 빌려본다.”라고. 두 번이든 세 번이든 읽고 싶은 그리고 소장하고 싶은 작품을 써내면 되는 것이다.

스릴러/미스터리 장르를 예를 들어 보자. 우리가 흔히 탐정 소설로 추억하는 이 장르는 70~80년대 문고판 붐을 타고 메이저 장르였다가 어느 시기를 기점으로 어린아이들이 읽는 마이너 장르로 격하됐고 출판 시장에서 차지를 감췄다. 그 덕에 대여점에서 유입되지 않았고 2000년대 들어 원조격인 코난 도일, 아가서 크리스티 등의 소설이 완역붐을 타고 시장의 새로운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스릴러/미스터리의 장르의 시장성이 보이자 출판사들은 연달아 외국에서 히트를 기록한 명작들은 엄선해 출간하기 시작했고 영미권만큼 이 장르가 발전한 일본산 스릴러/미스터리가 대거 유입됐는데 당시 일본 소설 붐과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요즘은 한풀 기가 꺾였지만, 스릴러/미스터리 장르는 독자들에게 구입해도 좋을 만한 책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판타지는 또 어떠한가? 대여점에서 한국 판타지는 안 나가도 있어도 서점에서 외국산 판타지 소설은 인기 아이템이다.

여기서 이 글은 읽고 이는 많은 이들은 그렇다면 ‘외국산 로맨스 소설은 왜 안 사는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국내 출판사들이 좀 더 돈 되는 한국 로맨스 소설에 집중하는 동안 번역 로맨스 시장의 맥을 끊었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허구한 날 댄스 일색의 가요를 욕하지만, 팝 음악을 듣지 않는다. 문화라는 것은 한번 맥이 끊기면 복귀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과거에도 지금과 같은 미드 열풍이 있었다. 80년대 미국 드라마는 한국에서 대단히 인기를 끌었지만, 90년대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구가하면서 아무도 미국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 우리는 대여점에 익숙해져 로맨스 소설을 구입하지 않기 시작했고 더불어 국내에 유입된 번역 로맨스의 수준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기 시작했다. 왜냐 국내에서는 거의 10~20년차를 두고 저작권료가 싼 과거 작부터 들여왔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템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환호를 지었던 ‘내 사랑 휘트니’가 국내에 출간된 것은 1994년이지만 외국의 출간연도는 1985년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모 출판사는 70~80년대 할리퀸을 작가 인지도 하나만 믿고 장편 꼬리표를 붙여 출간하는 만행도 서슴지 않고 있다. 노라 로버츠의 끝내주는 로맨틱 스릴러를 본 국내 독자가 몇이나 될까? 린다 하워드의 최근작은? 과거 유명 작가들 말고 현지에서 최근 인기가 급상승 중인 로맨스 작가 이름을 아는가? 결정적으로 번역 로맨스 소설 시장이 고사한 데는 단기간에 팔릴만한 싼 책만 공급한 출판사와 지독한 편식 취향의 완벽한 이중주다. 번역 로맨스 시장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후속 기사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자.

만약 신데렐라 스토리 로맨스 소설만 있었다면 영, 미 로맨스 소설 시장은 지금처럼 번성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계속해서 서사를 연구하고 다른 장르와의 장점을 취해 왔기에 지금의 위치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페미니즘 학자들이 지적하지 않더라도 린 그레이엄의 소설은 지독할 정도로 가부장적이다. 현실에서 가부장제에 진저리를 치는 한국 여성 독자들이 왜 그녀의 소설에는 아낌없는 환호를 보인가? 대다수의 한국 로맨스 소설들은 장르 상관없이 할리퀸 프레젠트였다. 모든 한국 로맨스 작가들은 진정 할리퀸을 꿈꾸는가? 린 그레이엄이 한국 로맨스의 나아갈 길인지 묻고 싶다. 작가와 그녀에게 환호를 보내는 독자 모두에게 묻고 싶다. 이것이 우리가 진정 우리가 꿈꾸던 로맨스 판타지인가? 자신의 남성이 모든 것을 책임져 주고 그 아래에서 보호받고 싶은가? 남성의 욕심을 사랑이란 이름으로 모두 감내해야 하는 자기희생적인 착한 여성이 우리의 역할 모델인가? 사랑이란 이름으로 여성이 학교도 직장도 그 어떤 꿈도 가지지 못하고 자신만을 바라봐 주길 원하는 비뚤어진 소유욕이 남성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의 열정이며 사랑이라고 생각하는가? 실타래처럼 얽힌 관계로 극한의 감정선까지 몰고 가야만 긴장감이 느껴지는가? 학대받지 않고서는 성적인 흥분을 못 느끼는 포르노의 여배우 속 여배우를 연기하듯 희열에 못 부림 쳐야 하는가? 우리가 좋아하면 그만이다. 타인의 취향에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독선적인 태도로는 발전도 미래도 없다.

결과적으로 한국 로맨스 시장은 영화 시장처럼 위기에 처해 있다. 더는 책을 사지 않는 독자, 1쇄 출판이 1,000부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마저도 회사의 유동성을 위해서 일뿐 바로 폐지로 넘어간다는 괴담이 난무하고 있다.앞서 언급했지만, 독자들의 편식 취향은 로맨스 소설의 장르 패턴을 고착화했다. 그나마 팔리는 책을 내려는 출판사의 얄팍한 상술과 독자들의 편식, 공부하지 않는 작가가 만들어낸 게 지금의 팔리지 않는 한국 로맨스의 현실이다. 독자들의 편식 취향도 문제지만, 공부하지 않는 작가도 큰 문제다. (게으른 작가가 심심풀이로 쓴 작품이 시장에 유입되지 않도록 출판사에서 자정해야 하지만, 이미 그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시장에서 과연 로맨스 전문 편집인이라는 명함을 내걸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최소한 작가라는 타이틀을 내거는 사람이라면 돈을 받고 원고를 넘긴 상업 작가라면 그에 합당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 배경 지식도 하나도 없이 ‘하버드 역사상 최연소 사법 시험 합격’ 같은 얼토당토 않는 재벌남 주인공이나 양산하고 일일 드라마 감상문에 가까운 글을 출판하는 작가들의 용기에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장르에 대해 이해조차 하지 못하면서 장르 문학을 쓰겠다는 자세는 용기를 넘어서 만용이다. 글의 기본은 독서다. 과연 드라마 한편 볼 시간에 책 한 권이나 읽었을까 싶은 소설도 부지기수다. 외국 작가들은 시장에서 살아남으려고 로맨틱 스릴러니 패러노말이니 해서 타장르를 개척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할리퀸만 쓸 것인가. 독자 수준이 그것밖에 안 된다고 반문할 셈인가? 아니면 취미로 쓴 게 우연히 출판이 됐을 뿐이라고 변명할 셈인가? 이미 시장이 무너져 내린 상황에서 그나마 팔리는 걸 써야 입에 풀칠은 한다고 할 것인가? 한국 로맨스계의 마지막 히트 상품 같았던 정은궐의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은 할리퀸이 아니어도 내용만 좋다면 서점에서도 충분히 히트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희망은 그래도 작가밖에 없다. 이제 그만 할리퀸의 꿈에서 깨어나자.

* 이글은 2006년 12월에 작성한 ‘두 번째 열병’에 대한 리뷰를 일부 재구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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