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이 빠진 코코 스토리 - 《코코 샤넬》

by 삼월토끼 posted Nov 0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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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로맨스, 드라마, 전기


12살의 가브리엘 샤넬은 어머니가 급사하자 아버지에 의해 두 자매와 함께 고아원에 보내진다. 10년 뒤, 가브리엘(오드리 토투 분)은 오페라 가수의 꿈을 품고 막내 고모 아드리엔(마리 질랭 분)와 함께 양복 수선일을 하며 동네 카페에서 노래를 부른다. 어느 날, 부잣집 아들인 에티엔 발장(브누아 포엘 브르두 분)이 가브리엘을 코코라 부르며 접근한다. 코코는 그의 도움으로 유명 카페 오디션 기회를 얻지만, 오디션에 떨어지고 아드리엔 마저 남자 친구 모리스와 살겠다며 그녀 곁을 떠나자 무작정 발장의 저택으로 찾아가 그의 정부가 된다.


발장의 정부가 돼 말 사육장 ‘루아얄리외’에서 머무르게 된 코코는 발장의 전 정부이자 유명 가수인 에밀리엔 달랭송의 모자를 만들어준 인연으로 디자이너로서 첫발을 내딛는다. 샤넬은 발장의 친구인 아서 ‘보이’ 카펠(알렌산드로 니볼라 분)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코코는 카펠에게 정략 결혼상대가 있음을 알고 사랑 대신 일을 택한다. 카펠의 도움으로 파리에 모자점을 내고 승승장구하던 샤넬에게 카펠의 죽음이라는 또 다른 불행이 닥친다.

‘내가 곧 스타일이다.’라는 어록처럼 이름이 곧 패션 아이콘인 코코 샤넬의 전기 영화다. 원제는 Coco avant Chanel(Coco before Chanel). 제목 그대로 디자이너 샤넬로 성공하기 이전의 인간 코코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코코 샤넬의 인생은 워낙 극적이기에 과거에도 영화화된 적이 있는데 조지 카젠더 감독이 1981년에 만든 ‘샤넬(Chanel Solitaire)’로 60~70년대에 활발한 활동을 했던 프랑스 여배우 마리-프랑스 피지에르가 37살의 나이로 코코 샤넬을 연기했으며 룻거 하우어가 에티엔 발장역을 3대 007인 로저 무어가 아서 ‘보이’ 카펠을 맡았다. 이 영화 역시 사생활 특히 - 카펠과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 것이 특징이다. 우연하게도 두 영화 모두, 카펠이 죽은 뒤 시간이 흐르고 샤넬이 유명한 샤넬 하우스 계단에서 홀로 앉아 있는 장면에서 엔딩 처리된다.

코코 샤넬의 인생은 사회적 통념이나 시선으로 재단하기가 쉽지 않다. 날 것 그대로의 코코의 이야기와 적당히 윤색한 사넬 신화 중 영화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후자다. 살아생전 누구보다 자신의 신화 창조에 나섰던 이는 샤넬 본인이었기에 이런 선택을 반길지도 모르겠다.

샤넬 신화에서 여성 해방의 - 여성을 코르셋에서 해방 시키고 활동적인 바지를 입혔다 – 선두주자라는 이미지는 절대적이다. 영화에서 부각시키는 것도 그녀의 이런 이미지의 연장 선상이다. 오드리 토투가 연기한 샤넬은 영화 내내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턱을 빳빳이 치켜들고 있다. 그녀가 경제적 무능력 탓에 발장에게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마음에도 없는 노리개 생활에 머무는 것도 모두 시대를 잘못 타고난 하층민 ‘여성’이기 때문이었음을 누누이 강조한다. 하지만, 현실은 철저하게 코코의 자의였다.

 

동네 카페에서 ‘코코리코’와 ‘누가 코코를 보았는가?’를 부른 탓에 코코라는 애칭을 얻은 코코 샤넬은 그 시절 프랑스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잿빛 작업복을 입은 여공 그리제트로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발장을 만나 그의 정부가 됐고, 25살에 오페라 가수를 포기하고 발장의 말 사육장인 ‘루아얄리외’에 가 그토록 원하던 사교계에 들어가게 된다.

 

발장 덕에 그의 전 정부인 유명 가수 에밀리엔 달랭송과 인연이 닿았다. 그녀가 바지 혁명을 일으킨 수 있었던 것도 ‘루아얄리외’에서 남자 승마 바지를 고쳐 입으면서다. 제목에 어울리는 영화라면 정부를 택한 코코 샤넬의 선택을 현대적인 시각에서 변명하며 페미니스트로 곧추세우지 말고 어떤 상황에서도 성공을 향해 이빨을 감추지 않던 코코를 그렸어야 옳다.

성공한 여성을 다룰 때 쓰는 패턴인 일에는 성공했으나 사랑에는 끝내 실패한 여성 공식에 끼워 맞추고자 유명한 아서 보이 카펠과의 젊은 날의 사랑도 완전히 뜯어고쳤다. 영화상에서는 샤넬이 성공에 문턱에서 카펠을 사고로 떠나보낸 것처럼 그려지지만, 현실은 그저 가쉽란 한 면짜리 기사 같다. 


샤넬을 만났을 때 카펠에게 사랑의 방해물인 정략결혼 상대 따위는 없었다. 코코 샤넬과 아서 보이 카펠은 1909년에 만나, 1918년에 카펠이 결혼할 때까지 파리에서 장장 9년간을 동거했다. 카펠이 샤넬을 버린 것은 1차대전 후 정치에 관심을 두면서 사생아라는 자신의 모호한 출생 신분을 세탁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샤넬 대신 귀족의 영양과 결혼해 이듬해 딸을 낳는다. 그리고 결혼 이전에도 수많은 연인이 있었기에 샤넬은 자신이 카펠의 1번 정부라는 사실에만 만족해야 했다. 카펠의 자동차 사고가 일어난 날은 1919년 12월 23일로 이 날 카펠은 크리스마스를 임신한 아내와 보내려고 칸으로 가다가 전복 사고를 일으킨다. 이 불꽃 같은 사랑의 결말은 더욱 우습다. 카펠은 아내와 두 딸에게 62만 파운드의 유산을 남기고 샤넬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탈리아인 정부의 몫으로 각각 4만 파운드의 돈을 남겼다.  

잠시 휴지기가 있었으나 샤넬의 주위에는 늘 사랑이 있었다. 피카소처럼 사귀는 남자에 따라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였다. 러시아 마지막 황제의 조카 드미트리 대공, 세계 최고의 부자인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2대 공작 휴와의 사랑은 유명하다. 그녀는 연인을 통해서 세상을 학습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20년 전 영화에서 별다른 발전이 없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인간적인 코코의 면모를 부각시킨다는 이유로 샤넬를 완전히 배제 시킨 것이다. 그녀가 바지를 만든 계기나 맥고 모자, 그 유명한 샤넬 풍의 시초인 저지룩을 카펠의 저지 셔츠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것 등이 스쳐가듯 처리된다. 더욱이 현재 샤넬 하우스를 소유한 칼 라커펠드가 의상을 담당했다고 하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샤넬룩은 연대와는 맞지 않는다. 일례로 극 중에서 코코 샤넬이 입고 나오는 그 유명한 줄무늬 셔츠는 웨스트민스터 공작의 취미 생활인 요트에서 영감을 얻은 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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