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Nov 07, 2006

모든 것을 감싸 안는 화합의 만두 빚기 - 《김치만두 다섯개/이지환》

by 삼월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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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현대
국가 한국
출판년도 2007
출판사 두레미디어
할리퀸 종류1 싱글
서산 영산벌 제안 이씨 이참판 댁 종손 애기씨인 수하는 삼수 끝에 서울의 한 대학에 입학한다. 당장 대학 입학을 위해 서울로 갈 채비를 해야 하지만 그다지 달갑지 않은 가족사 때문에 마음이 편치가 않다. 서울로 유학간 아버지가 억지 결혼한 수하의 친모를 버리고 다른 여성과 바람이나 딴 살림 차리고 산 지가 이십년 세월.

그 동안 종택만 지키며 아버지 돌아오시길 간절히 바라던 어머니는 마흔 다섯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수하는 이제 정부인(貞夫人)이 된 서울 어머니 집으로 들어가 이복 동생 준영,준희와 더불어 서먹한 아버지와도 한상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 사이가 된 처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서울로 떠나기 전 서울에서 머리에 포마드 가득 발라 올백으로 넘긴 사내가 하나 내려와 종택 <제안당>을 팔 것을 종용한다. 사내의 할아버지는 과거 주인댁 황소에 쌀 한 섬 얻고 도망가서 그것을 밑천으로 삼아 지금은 재벌 회장이 된 입지전지적인 인물 황만복. 수하는 도규의 말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마당에서 거처하는 똥개 월이에게 똥규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준다.

생전 어머니가 아끼셨던 책 그리스인 조르바에 등장하는 문구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나는 아무것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 를 가슴에 새기고 서울 생활을 시작한 수하. 예상대로 새로운 가족들과의 생활은 쉽지 않고 처음 겪는 대도시의 얄팍한 인간 관계에도 지쳐 가기 시작한다.

학우라는 이름으로 그녀의 노트며 자료를 갈취하는 복학생 선배 원석, 친구처럼 다가왔지만 결국은 다단계 영업 사원이었던 정숙, 보이는 것들만 쾌락하고 향유하고 즐기는데 익숙한 남자 체헌, 자신의 행복을 위해 타인의 짓밟는 현정 등 수하가 대도시에 만난 사람들은 모두 모두 그녀를 이용하거나 아니면 그녀 때문에 불행 해졌다며 모든 책임을 덧씌우려 든다. 오히려 이해 관계 때문에 만난 도규 하나만은 그녀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의지가 되어주는데.
아버지 때문에 사랑을 믿지 않게 된 수하는 “이 정도만 좋아한다면,결혼 할 수 있어. 내 마음 깊이까지는 건드리지 않고, 덤덤하게 낯선 이처럼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사랑 같은 것, 회색빛 까지만 가능하다. 그래야 어째든 안심이 되니까. 절실하지 않아야, 감당할 수 있다” 라고 생각하며 체헌을 받아들인다.

수하는 친 어머니가 아버지가 해 드렸던 특별한 의미가 담긴 김치 만두를 만들었다가 집안의 분란을 일으키나 이것을 기화로 본연의 자리를 찾기 시작한다. 다른 여인을 위해 수하가 애써 만든 김치 만두를 남겨 놓는 체헌을 보면서 수하는 그와 자신이 인연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종택으로 돌아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모두 보듬어 안고 살아갈 방도를 연구하는데. 오랫동안 자신을 곁을 지켜 주었던 병태 할배, 이학 할매, 안성댁 아주머니, 그리고 탈북자 네 식구와 더불어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정숙이까지 데려다가 큼지막한 자신만의 만두를 빗는 수하.

“만두는 참 착해요. 어질고 넉넉해요. 뭐든지 싸 안잖아요. 다 섞여서 만나요.” 라는 수하의 말처럼 만두는 가족간의 아픔도 오랜 원한도 감싸 앉는 기폭제가 된다. 수하는 자신이 오랫동안 오해하고 있었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관계가 사실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고 아버지의 유약한 단면도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늘 자신의 곁에서 그녀를 감싸 앉아주며 만두의 맛 뿐만 아니라 그것을 빗기 위해 수하가 겪어야 하는 수고스러움 – 종택의 무게, 종택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수하의 애정 –까지 모두 배려해 주는 도규와의 사랑도 일군다.

하지만 도규와의 사랑은 신분제라는 높디 높은 벽이 자리 잡고 있었으니 비록 시대는 달라졌다 해도 도규는 종놈의 손자이고 수하는 종손 애기씨. 소 훔쳐 달아난 종놈의 씨라며 안면몰수하고 그를 박해하는 종택 사람들 눈을 피해 조선 시대 의뭉스런 연애질을 하는 맛이 남다르다. 수하와 도규는 얼음처럼 차갑게 만나 달그락 거리고 싸우다가 얼음이 녹아 물이 되듯 하나로 섞인다.

기존의 이지환 작가의 작품에서 나왔던 순진무구하나 강직한 품성의 여주인공, 재벌 남주인공의 익숙한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이런 익숙한 재료에 덜 익숙한 재료들을 섞어 작품을 빚어 내는 작가의 솜씨가 감탄스럽다. 더불어 종택의 삶을 세심하게 묘사하기 위해 오랫동안 사전 작업을 했을 작가의 노고도 치하하고 싶다.

하지만, 수하의 세상 적응기, 가족간의 갈등, 사회에서 배반 당하는 경험 등이 다소 길게 이어져 본격적인 맛을 보기 전에 쉬이 지친다. 하지만, 제대로 된 음식을 맛보려면 올바른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것은 일찍이 장금이도 일갈 한 것이 아니던가. 부디 기다렸다가 <김치 만두>의 진맛을 모두 맛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이한 것은 도규의 직업이 대부업자로 설정된 점이다. 얼마 전 연예인들이 대거 대부금융업(사채)광고에 출연해 적지 않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바 있는데 극 중 도규 역시 우리가 흔히 인식하고 있는 사채업자와는 달리 매우 긍정적으로 묘사된다. 한동안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조폭이 나서서 응징한다는 조폭 판타지 영화가 극장가를 휩쓴 적이 있다. 도규는 극 중 다른 사채업자에게 피해를 입은 여성에서 거금을 주고 그녀가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앞서 말한 조폭 판타지의 또 다른 변형인지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볼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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