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Extra Form
장르 현대
국가 한국
출판사 청어람
할리퀸 종류1 싱글
* 아래 글에는 다수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요즘 막장 드라마가 장안의 화제다. 여기서 막장이란 본래 사전적 의미와는 거리가 일종의 신조어로 ‘갈 데까지 갔다’는 끝장의 잘못된 표현이다. ‘인생 막장(밑바닥 인생)’ 연상하기 쉬우나 막장 드라마에는 절대 이런 밑바닥 인생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시나, 재벌 집 안방이 주요 무대이며 남자 주인공은 실장님들이다. 그럼 여주인공이 밑바닥 인생일까? 서민이라고 재벌집 사모님에게 뺨을 맞지만, 그녀들의 집안은 먹고 살만하고 1회에는 백조라도 마지막회에는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를 책임지는 전문직으로 거듭난다. 이야기의 개연성이 없이 설정, 캐릭터, 소재 등을 자극 일변도로 몰고 가는 드라마를 막장드라마라고 칭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시청률만 올라간다면 그 어떤 짓이라도 할 수 있는 드라마가 막장 드라마의 정신이다. 내 얼굴의 침 뱉기 식이나 <너는 내 운명>, <아내의 유혹>같은 막장 드라마가 뜨기 전부터 로맨스 계에는 이런 막장 드라마가 있었다. 린 그레이엄으로 대표되는 일명 ‘욕하면서 보는 로맨스’ 소설은 지금 방영중인 막장 드라마의 원조격이다.

‘욕하는 로맨스’는 극적인 상황에서 가장 정형화된 플롯과 캐릭터로 갈등 구조를 극한까지 몰고 간 뒤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해 카타르시스를 분출하도록 유도하고 이야기 구조는 한눈에 봐도 파악할 수 있도록 쉬우며 선악의 대비도 뚜렷하다. <관련 글 참조.2004년 4월 작성>

250페이지라는 짧은 분량과 저렴한 원고료, 할리퀸의 기획 삼박자가 딱 맞아떨어진 로맨스계의 최대 히트상품으로 배경에 깔린 가족주의와 가부장적인 마초 남 주인공, 한없이 당하기만 하는 여주인공 코드는 국내 로맨스 독자들 – 잠재적인 로맨스 작가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이후 욕하면서 보는 로맨스는 한국식 일일드라마, 트렌디 드라마와 결합해 한국식으로 토착화됐고 박미연이 2007년 4월에 발표한 <D-100, 그 후? (이하 D-100)> 도 그런 한국식 욕하면서 보는 로맨스의 진화 버전이다. 재밌는 사실은 이 로맨스소설이 실제 방송국과 드라마 판권 계약을 했다는 사실이다.

나 강경희는 25살의 일명 이골이 난 2년차 가정주부(그러나 평범한 가정집 주부는 아닌 부잣집 막내딸)로 그녀의 집에는 푸른 수염의 비밀의 방처럼 접근 금지된 방이 하나 있다. 바로 남편의 서재로 평소에는 남편이 있을 때 살짝 청소만 할 수 있는 그 금기된 공간에 우연히 들어가게 된 경희는 남편이 비밀스럽게 간직하고 있던 서류를 발견하고 남편이 자신을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제목의 D-100은 사랑의 100일 기념일이 아니고 이혼하기 100일 전부터 남편에게 복수를 꿈꾸는 강경희의 이야기다.

하지만, 남편의 배신이란 로맨스 계에서는 맑은 물이 우러날 정도로 우려먹은 일명 사골 아이템이 아닌가? 작가는 처음부터 강경희가 옆집 아이를 예뻐하는 모습을 보이며 불임의 복선을 깐다. 불임, 남편의 배신이라는 자극적 소재를 보여주고서 전개되는 것은 당연히 독자들이 욕하면서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도록 경희 남편 이정철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33살의 잘나가는 벤처기업 CEO인 정철은 대놓고 아내를 무시할 뿐만 아니라 2주년 결혼기념일 잊을 만큼 무심하다. 외식이라도 하려고 몰래 남편은 찾아갔던 경희는 남편과 친정 오빠의 대화를 통해서 두 사람의 결혼이 부자 장인의 투자라는 결정적 행동 덕분에 이뤄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또 한 번 분노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경희의 상처가 정당성 여부다. 일명 엄친아인 잘난 오빠들 틈세 속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던 그녀는 공부에 별 뜻이 없었으나 부모님 뜻으로 겨우겨우 대학 졸업하고 ‘백수로 친구들 앞에 기죽는 게 너무 싫은 나머지 대어를 낚는다는 심정으로 오빠 친구인 잘난 남자와 결혼’을 감행한 것이기 때문이다(어린 시절부터 정철 오빠를 짝사랑했다는 사실 여부가 보태지기는 한다.). 이런 상황에서 나의 순수한 사랑이 돈밖에 모르는 나쁜 남편 때문에 망가졌다고 울부짖는 것은 우습다. 누가 봐도 잘난 집안과 그 배경을 노린 잘난 남자의 계약 결혼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것은 전혀 중요치 않다. 그저 정철은 악이다. 뒤에서 차차 밝혀지겠지만, 자기 중심적이며 소아적 사고의 소유자인 경희에게 공감하기는 쉽지만은 않다.

두 사람은 할인점에 갔다가 우연히 남편의 첫사랑인 미나와 재회한다. 남편의 첫사랑은 한눈에 보기에도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세련된 여성. 질투심에 찬 경희는 집으로 돌아와 남편이 이미 불륜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마구 닦달해댄다. 아이러니한 것은 경희에게는 절친인 이성친구 정우가 존재한다는 점. 그녀는 자신에게 무심한 남편이란 면죄부를 내세워 필요할 때마다 정우의 어깨를 빌린다. 전후 사정이야 어쨌든 경희는 자신을 기만한 남편에게 복수극을 펼친다며 일차적으로 경제적 독립을 하기로 마음먹고 남편에게 명품 가게를 차려달라고 조른다.

경희는 정우와 가게 계약을 하러 갔다가 마트에서 우연히 만났던 꽃미남 안내 직원 인식과 재회한다. 인식은 사실 건물주에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잘나가는 남자로 급한 일이 생긴 동생 대타를 나섰다는 것. 눈치 빠른 독자라면 디자인 회사라는 대목에서 미나가 그 회사에서 일한다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미나는 대놓고 자신과 정철과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한다. 악녀 연적이 등장하면 다음 코드는 악독한 시어머니이다. 자신의 아들이 최고로 잘난 줄 아는 시어머니의 등장으로 경희가 사실 오랜 불임으로 고생했음이 밝혀진다. 그녀는 시숙이 운영하는 산부인과에서 별 효과를 못 보자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남편이 무정자증이며 남편이 그 사실을 의도적으로 숨겨 자신의 불임이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알고서 본격적으로 경희는 자신의 집안을 이용해 남편을 철저하게 나락으로 떨어뜨리는데 돌입한다.

작가는 후기에서 타인의 불행을 단순 글감으로 삼는 것은 안 된다고 쓰고 있지만, 책 속에서 벌어지는 행동은 정반대다. 불임과 외로운 결혼 생활 속에서 경희는 늘 남편이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주길 원했으면서도 남편에게 전후사정도 듣지 않고 더한 복수를 감행한다. 막강한 재력을 보유한 아버지에게 남편을 고해 받치고 아버지는 딸을 위해 사위의 잘 나가던 사업을 단시일 내에 끝장낸다. 동네 구멍가게도 아닌 유명한 반도체 기업이 정말 쉽게 무너진다. 세계최초 특허와 기술개발 기술을 가진 IT 기업이 장인이 투자금을 빼서 그것도 며칠 사이에 망하기 쉬운 일인지의 여부를 따지는 것은 이미 무의미하다. 남편을 끝장낸 경희는 이번에는 전문 변호사를 사서 자신을 불임으로 만든 시숙네 병원을 망하게 한다.

주변 사람들이 그녀의 독한 행동을 탓하자 경희는 이렇게 말한다. “정말 독하다면 이렇게 가슴에 생채기 내지 않고 미련 없이 무시한다. 하지만, 나는 그게 안 된다. 나도 괴롭고, 남편도 괴롭고, 다 같이 괴로워 죽을 만큼 헐떡거리며 처절해져야 돌아서는 미련한 사람이 나일걸 어째.” 한마디로 자신이 남편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지려면 속 시원한 복수극이 있어야 한다는 변명이다.

뭐 어쨌든 그녀의 복수극은 시원스럽게 마무리되고 경희는 멋진 홀로서기를 다짐하는데 이 말이 민망할 정도로 남편에 복수극 나아가 그녀의 인생에서 그녀 혼자 해낸 일은 아무것도 없다. 결혼은 집안 덕분에 손쉽게 이뤄졌고 명품 가게는 남편이 내줬고(계약부터 공사 전반을 맡은 것은 친구 정우) 복수는 아버지의 돈 때문에 이뤄졌다. 그 가운데서 경희는 부잣집 못된 공주님처럼 자기 뜻대로 안 되면 징징거린 게 전부이다. 이 복수극이 시초로 그렇다. 애초에 정철이 경희를 떠받들어줬더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결혼 생활이나 그렇지 못하자 자기의 일방적 희생의 대가를 물어내라고 남편을 압박한다.
경희의 복수극이 정당성을 획득하려면 정철이 악인이어야 하나, 도리어 동정심이 드는 것은  자신이 불임이라는 것을 알고 정신 병원 생활을 할 만큼 괴로워한 정철이다. 사실, 이 소설에는 정당성 여부를 따지는 것도 우습다. 경희는 정철이라는 대상을 빌려 자신의 맘처럼 안 되는 인생에 한풀이하고 싶었을 뿐이다.

마지막은 늘 그렇듯 두 사람이 정해진 절차대로 화해하고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지만, 불임 부부를 통해서 화해와 사랑을 전한다는 메시지는 찾을 수 없는 한낱 허울로 느껴진다. 작가의 끔찍했던 과거 작품보다 한층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익숙한 클리세 재현과 인식처럼 왜 등장했는지 알 수 없는 일회성 캐릭터 사용도 여전하다. 자극적 소재와 경희의 대상 없는 한풀이는 여러 결점에도 이 소설을 읽게 하고 때로는 눈물 흘리게 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욕하면서 읽는 로맨스의 불가해한 힘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욕하면서 읽는 로맨스는 욕하려고 읽을 뿐, 로맨스의 맛을 알려주지 않는 쓰레기 음식과 같다는 것을. 그리고 책장을 덮는 순간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Copyright ⓒ 로맨스웹진 로맨시안(www.romancian.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