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8.27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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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역사
국가 한국
출판년도 2007
출판사 신영미디어
할리퀸 종류1 싱글
고구려 말, 고선웅 장군의 딸 휘은은 정인(情人)인 한유가 당나라와의 전투에서 전사(戰死)하자 반 실성 상태에 놓인다.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 패해 멸망한 뒤 휘은은 당에 포로로 끌려가는데 그곳에서 죽은 줄 알았던 한유를 보고 정신을 되찾지만, 기쁨도 잠시 그는 다정다감했던 한유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당의 장군 적유로 밝혀진다. 휘은은 적유의 첩이 되어 한 집에서 살게 되면서 점점 적유에 호감을 갖게 되고 죽은 한유와 적유 사이에서 갈등 한다.

《서향》은 2005년에 출간된 《수련》에 이은 강애진의 두 번째 출간작이다. 국내 역사 로맨스 물에 흔히 쓰이는 고어체 대신 간결한 어투를 사용하고 있으며 서사도 우리가 흔히 봐왔던 반전 코드가 중첩된 TV 드라마 구조를 채용해 배경만 고구려 시대일 뿐 흡사 현대 로맨스를 읽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외국의 경우에도 90년에 들어서면서부터 역사 로맨스는 색다른 연애담을 위한 무대 제공 외에는 현대 로맨스와의 차별성을 찾기 힘들어졌으므로 이것이 작품의 질을 평가하는데 있어 판단 기준은 되지 못한다.

문제의 핵심은 이 소설이 다듬어지지 않은 초고 같다는데 있다. 작가는 배경 스토리에 불과한 고구려와 당나라의 적대적 상황에서부터 한유가 적유와의 맞대결에서 져 전사하는 시점까지를 장황하게 설명하느라 1권의 200페이지 정도를 소비한다. 물론 한유의 존재가 이 소설의 중요 키워드이며 긴박하게 돌아가는 전장의 분위기를 생생히 그려내고자 하는 작가적 욕심도 한 몫 했겠으나 배경 스토리는 스토리를 돋보이게 해주는 배경일 뿐이다.

묘청을 질투하는 왕유나 평소 적유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정지상이 - 자객을 보내 휘은을 납치하려다가 실패하자 - 적유를 문책하는 상황은 이야기의 흐름을 끊고 적절한 부연 설명도 갖추지 못해 의문만 낳는다. 전체적인 극의 흐름상 묘청이나 적유가 주변의 시기질투에 시달린다는 대목이 들어갈 이유가 전혀 없는데 이런 행동이 등장하는 것은 캐릭터가 작가가 만들어 놓은 설정에 갇혀 자체적으로 행동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한유가 고선웅에게 멍석말이를 당하는 장면이 삽입되거나 죽어가면서 “약속을 지켜야 했는데..”라고 읍조리고 이를 지켜보던 아버지 묘청이 오열하는 장면 역시 박제화된 도구에 불과하다.

플롯 라인도 터질 듯하다. 근자에 TV 드라마에서 선보인 플롯이 모두 나온 듯하다. 적유는 자신이 전장에서 죽인 사내가 휘은의 정인인 한유라는 사실을 알고 고민하고 적유를 사랑하는 수양누이 부선은 하녀 기하와 결탁하여 휘은과 적유를 해할 음모를 꾸미며 적유의 친구인 진사익은 결혼을 극구 거부하는 적유에게 자신의 여동생 진소란를 시집 보내려 한다. 휘은의 집에 잠시 들렀던 묘청은 적유을 보고 자신이 감춰왔던 오랜 출생의 비밀을 떠올린다. 얼기설기 꼬인 플롯도 모자라 휘은의 하녀인 하령과 적유의 심복인 서우의 서브 스토리까지 더해진다.

방만한 스토리 운영으로 말미암아 플롯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방기 했으며 서브 스토리도 흐지부지 되는 결과를 초래했음은 물론이다. 플롯과 배경 스토리의 압박이 캐릭터의 부실까지 불러온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규방 아씨처럼 굴던 휘은이 부선과 거친 말 타기 승부를 벌이고 말 위에 한 발로 서는 신공까지 선보이면 누구라도 어리둥절 할 수밖에 없다. 스티븐 킹은 자신의 창작론인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수정본=초고 – 10%’라는 공식이 자신의 성공 비결 중 하나라고 언급했다. 모든 작가가 이를 따를 필요는 없지만, 초보 작가들은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전체적인 완성도와 더불어 또 다른 문제는 강간 이데올로기다. 한국 로맨스 소설에서 어찌 된 일인지 여주인공들은 강간을 당해도 남자주인공의 고백이면 모든 것을 너그럽게 용서한다. 더불어 강간 당한 뒤 여주인공은 정신적으로 성장하고 육체적 관계의 물꼬 역할도 한다. 강간이 여주인공에게는 남자주인공을 이해할 수 있는 연결 고리가 되고 남자주인공은 자신의 정신적 미숙함을 드러내는 도구로 강간을 이용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강간은 한국 로맨스에서 성장과 소통의 코드로 이용되고 있다.

《서향》에서도 마찬가지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한사코 결혼을 거부하는 적유의 비밀과 이 비밀을 알게 된 후 적유에게 마음을 여는 휘은의 구도가 공감을 얻을 만하다. 하지만, 하필 그 시점이 적유가 휘은을 겁탈한 직후 이어진 고백이며 휘은은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을 질책하며 적유의 아픔을 모두 끌어 앉고 성숙한 여인이 된다는 건 도무지 공감불가다. 적유에게 철없이 굴지 말라는 호된 질책을 들은 이전 상황을 고려해도 강간을 당했는데 자신의 감정은 모두 삭이고 이제는 남자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헌신일변도로 돌아서는 것을 성숙한 사랑으로 읽어야 하는가? 배경 시기를 떠나서 겁탈이 대체 왜 성장 코드로 사용돼야 되는가? 겁탈 직전 정신을 차리고 미수에 그치면 남자 주인공의 고뇌의 깊이가 덜한가? 물론 해외 로맨스에서도 비슷한 시기가 있었다. 70년대 초 역사 로맨스 소설에서 남자 주인공이 여주인공을 옷을 찢고 성 관계를 갖는 것 –한마디로 강간하는 것이 관례 여서 보디스 리퍼(bodice-ripper : 속옷을 찢는 사람) 라는 치욕적인 이름까지 붙여졌으며 로맨스사가 들은 이 시기를 아예 없는 시절로 여기고 싶어한다. 70년대 미국 보디스 리퍼의 망령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지치지도 않고 부활하는 걸 볼 때마다 몸서리가 쳐진다. 10년 여 동안 했으면 이제는 그만 할 때도 됐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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